
일진회 거제지부와 싸운 윤상우 거제군수
윤상우(尹相佑·尹相泰, 1882∼1942)는 1905년 3월 20일∼6월 19일까지 거제군수로 재직했다.
그는 경북 달성 출신이며, 1911년 경남 고령에서 일신학교를 설립하여 항일구국교육에 힘쓰고 1915년 1월 15(음)일 경북 달성군 수성면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하고 통령(統領)에 선임되어 1919년 변상태(卞相泰)로 하여금 경남 창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케 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또 유림들의「파리장서」를 영문으로 번역케 하고 5,000원을 여비로 제공하며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1년 정부로부터 애국장을 받았다. 러일전쟁 당시 부임한 윤 군수는 거제도 일진회 지부와 결탁하지 않고 싸운 인물이다.
1906년 1월 일진회는 자기들과 협조하지 않고 방해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조사하여 대한제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1906년 6월 1일 유명한 친일단체 일진회 본부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근일 각 지방에서 개진교육회(開進敎育會) 및 청년회와 해산회사(海産會社)라고 칭하는 무리들이 함께 공모하고, 게다가 지방관과 진위대(鎭衛隊) 등이 역시 몰래 이들을 도와서 우리 회원에게 폭행과 박해를 가하고 있다는 경보(警報)가 빈번하게 도달되고 있음.
이에 본회에서 엄격히 지방회원들에게 경계하도록 신칙하여 인내하고 정중한 태도로 임하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부에 통보하여 신속히 진압 제어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지방의 상황은 여전히 조그만 효과도 없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음.
一.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운 자와 간악한 서리들은 여전히 흉폭한 행동을 저들 마음대로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당원들은 이와 같이 곤란한 경우를 당하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궐연히 일어나 정당하게 방어할 수단을 확립하여 일사불란하게 대처할 것을 결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