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행 중 다행이었던 사람은 또 있으니 구약성경 창세기 33장에 나오는 절름발이가 된 야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야곱이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의 외삼촌 집 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 집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이내 그의 앞에는 형 에서란 사람의 군대가 가로막고 있다는 전갈이 그의 앞을 캄캄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는 일찍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아야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어버림으로써 형으로부터 복수의 칼을 갈게 했고, 그 일로 인하여 외삼촌댁으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거기서 20년이란 세월을 보내었지만 세월이 형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지를 못했고, 다시 형은 군사까지 거느리고 동생을 죽이겠다고 지금 얍복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야곱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이때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저 형 에서의 손에서 저를 구원해 주옵소서. 저는 형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형은 본래부터 악독한 사람이고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나를 만나면 가만히 두지를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나님이 이 절박한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 야곱의 기도는 간절했고 절박했다. 시간도 많이 흘러 밤이 거의 다 지나 동녘에는 벌써 해가 돋으려고 하는 새벽녘이 되었을 때까지 그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쳐버리셨다.
우리의 생각처럼 하나님이 그에게 힘을 배나 주셔서 형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시던가, 아니면 야곱이 기적을 베풀 수 있도록 능력을 더해 주시던가, 아니면 하나님이 대신 싸워 주시겠다는 표시를 해 주신다면 야곱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건만, 이런 야곱에게 천사를 보내어 밤새도록 씨름하게 하여 힘을 다 빼버리신 하나님이, 막다른 골목에 와서는 환도뼈까지 탈골 시켜 버리시니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이런 몸으로 야곱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야곱은 더 이상 싸움은 고사하고 도망가지도 못하는 불구자의 신세가 되어버렸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옹지마와 같은 불행 중 다행의 일이 되었기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전능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의 형 에서로서도 야곱을 원수 같이 생각하여 죽여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20년을 기다려왔지만, 자기 동생 야곱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말에 사촌이 잘되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만약 야곱이 자기의 축복을 빼앗아가서 의기양양하게 잘되어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쩌면 형은 그런 동생이 더 미워졌을 것인데, 그런 에서의 눈에 들어온 야곱의 모습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고 자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측은한 거지꼴의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복수는커녕 불쌍하여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어 에서는 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말았지 않은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요 비밀인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어떤 지혜로 우리를 도우실지 모른다. 우리 한번 바라보자! 그분의 능력을, 우리한번 기대하자! 그분의 기이한 역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