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포로 조직’ 정부개입 개연성 문건 발견돼
‘반공포로 조직’ 정부개입 개연성 문건 발견돼
  • 변광용 기자
  • 승인 20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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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거제포로수용소 내 반공포로 조직, ‘정부차원서 대책 수립. 시행”

▲1951년 7월 23일 조진태 당시 법무부장관이 국무총리실 강원길에게 '거제도포로수용소 포로동향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보고서. 이 보고서는 7월 26일 강원길이 대통령비서실로 전달했다.

1951년 거제포로수용소내 반공포로의 조직에 당시 이승만 정부가 직접 개입했음을 나타내주는 문건이 발견됐다.

당시 17만여명의 전쟁포로가 수용돼 있던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는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가 극한 대립상태를 유지했으며 살인과 방화 등 폭동까지 심심챦게 발생했다.

이제껏 수용소내 반공포로에 대한 정설은 ‘자연발생적 조직’이었다. 친공 포로의 세와 공격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포로들이 친공 포로들에 대항하기 위해 반공청년단을 조직하는 등 반공포로들을 규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51년 7월 23일 조진만(1903∼1979·일제 때 판사) 당시 법무부장관이 국무총리실 강원길(姜元吉)에게 ‘거제도포로수용소 포로동향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보고서가 최근 발견되면서 기존 정설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거제포로수용소에 반공포로를 조직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수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차원의 조직적 개입 개연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51년 7월 26일 대통령비서실로 전달됐고, 미 제8군단에도 통보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전갑생 경남 근현대사 연구원이 입수, 본지로 보내왔다.

접수번호 1,768, 접수연월일 4284. 7. 23, 보고자 강원길(康元吉), 발신자 법무부장관, 건명 거제도포로수용소 포로동향에 관한 건 등으로 돼 있는 이 보고서에는 “함안서(咸安署)에 자수한 남로당원 정석빈(鄭錫斌)의 보고에 의하면 (1)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서 지리산에 도착한 자의 보고 내용을 여좌함 A. 수용소 내에는 노동당 중앙조직부 부책 등 간부들이 일개전사로서 위장하고 있음. B. 감시경비대에 비치된 중경기(重輕機) 2백여 문은 포로병들이 하시(何時)라도 탈취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음. C. 폭동을 궐기하여 지리산 입산계획이 수립되고 선박준비를 경남도당에 독촉하고 있음 등의 포로수용소 동태에 대한 보고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2) 대책, A. 경비를 강화할 것, B. 수용소에 공작원을 파견할 것, 의견- 본건을 미군 제8군단에 통보함이 어떠하리까 가(可) 등 ‘공작원 파견 등의 대책수립을 요구하고도 있다.

전갑생씨는 “당시 이승만 정부가 포로수용소 내에 공작원을 파견, 활동시켰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왔으나, 실제 문건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제도포로수용소에 파견된 공작원은 여러 경로를 거쳐 1951년 8월 17일 조진태 법무장관에게 추가의 보고서를 보냈다. 조진태 장관이 국무총리실 강원길에게 보고한「거제도포로수용소 실황조사보고의 건」(접수번호 1889)을 보면 수용소 내에서의 공작활동이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경남도경의 포로수용소 동향보고에 대해 조진태 법무장관이 대통령 비서실에 보고한 대비책에도 이같은 ‘정부개입’개연성이 드러나고 있다.

조진태 법무장관은 1951년 8월29일 대비책으로 (1) 현재의 여단장과 이하 간부를 경질할 것 (2) 경찰 및 국군의 최소한도 인원에게 내부조사를 인정할 것 (3) 수용소 내에 민족사상이 철저한 자를 프락치로 침입시킬 것 등을 보고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이승만 정부가 공작원을 파견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반공’포로를 만들고자 했다”는게 전씨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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