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일진회 총대 이행민(李行敏)이 내부(內部)에 청원하였는데, 거제군수 윤상우가 불법행정하며 탐욕스럽게 돈을 모으고, 회원이 관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관리 30여 명으로 회원을 몰아서 내쫓고, 회원 옥태일(玉泰一)과 이순성(李順成)을 잡아서 관찰부에 넘겼다고 지회장 손석만(孫錫萬)이 보고했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윤상우 군수가 일진회 거제도지회의 회원과 단체 활동 등을 방해하고 있다고 일진회는 대한제국 내각에 고발하였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일진회 회원들은 일진회 거제도지회 지부장 손석만, 회원 옥태일·이순성 등이었다.
결국 일진회의 계략으로 1906년 6월 18일 윤상우가 춘궁기에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꿔준다면서 둔덕, 사등 두 곳에 쌓아 둔 조세 곡식을 실어다가 모두 팔아버렸다고 거제군파원 임영하(林永夏)가 보고하였다.
그 결과, 막중한 공곡을 경리원의 명령 없이 멋대로 팔아버리는데도 별반 징계가 없으면 각 군이 모두 이렇게 하여 곡식이 없어질 것이라면서, 경리원에서 즉시 명령하여 해당 곡식을 수조관에게 돌려주라고 했는데도 완강히 가로막고 있으므로, 거제군수 윤상우를 폐하께 아뢰어 면직되도록 하시기 바란다고 경리원은 내부대신 이지용에게 보고했다.
이 모함으로 윤 군수는 1906년 6월 19일 파면되고 말았다. 그러나 1906년 9월 29일 윤 군수는 잘못된 징계라고 해벌됐다.
이처럼 윤 군수는 일진회 거제도 지회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회원들까지 잡아들이기도 하였다. 또한 1909년 11월 8일 윤 군수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실을 보고 "(이토 히로부미는) 결코 아국(대한제국)에 대하여 공적이 있었던 인물이 아니다.
일본의 통감으로서 와서 중대한 통신 교통 등의 실권은 모두 이를 자국에 획득하여 추호도 우리나라의 이익을 증진시킨 것이 아니므로 이번의 흉변(저격사건)에 대하여도 국민으로서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일부 친일인사들이 이토 죽음을 애도하는 일을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