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殉葬)
순장(殉葬)
  • 거제신문
  • 승인 201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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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 대부 위무자(魏武子)에게는 애첩이 한 명 있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자 아들 과(顆)를 불러 "내가 죽거든 저 여인을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도록 하라"고 유언했다.

그 후 병이 더욱 위독해지자 이번에는 "나는 저 사람과 한 시도 떨어져 살 수 없으니 나와 함께 묻어 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죽자 아들은 맑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르자며 그 여인을 다른 데로 출가시켜 주었다.

후에 과는 진(秦)나라와의 전쟁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어떤 노인이 나타나 풀을 마주 묶어 적장의 말이 풀에 걸려 넘어지게 했다. 과는 덕택에 적장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린다.

그날 밤 꿈에 풀을 묶었던 노인이 나타나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내 딸을 묻지 않고 개가시켜준 은혜를 갚은 것이오."라고 했다. 고사성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다.

사람이 죽으면 그게 끝이 아니라 이승에서도 평상시와 같은 생활이 재현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죽으면 써야 할 돈이나 그릇뿐 아니라 함께할 사람도 필요했다. 특히 한 집단의 지배층 인물이 사망했을 때 산자를 강제로 함께 묻는 것이 순장이고, 죽은 자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순사(殉死)다.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에 부여(扶餘)의 순장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금지시켰다는 내용이 전한다. 고구려 동천왕(東川王)이 죽자 그를 따라 순사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서 상(喪)을 당하면 상주가 굵은 베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풍습은 순사의 간략화이며, 순장은 사람 대신 토우(土偶)를 함께 묻게 된다.

가야(伽倻)에는 순장 흔적의 고분(古墳)이 많다. 그런 탓인지 MBC 주말 드라마 '김수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순장’장면을 재현하여 눈길을 끌었다. 죽은 자를 위해 산자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동행이 아니라 너무나 비참한 장법(葬法)일 뿐이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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