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죽음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 거제신문
  • 승인 201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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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라고 했을 만큼 그녀의 생애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미모에 10개국의 언어 구사력, 외교적 수단과 정치적 배짱까지 역사가 평가하는 대단한 여걸이었다. 거기에 러브스토리 또한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재창조되면서 미(美)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녀는 기원전 69년 이집트 왕가(王家)의 셋째 딸로 태어난다.

18세에 부왕이 죽자 15세의 남동생과 결혼하여 공동 파라오가 된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神)과 동일시되는 최고 통치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형제들의 권력투쟁에 밀려 폐위된다. 물러난 얼마 후 로마의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점령하자 변방에 있던 그녀는 카이사르에게 특별한 양탄자를 선물한다. 그 양탄자 속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라의 여인이 되어 나타나는 기막힌 연출로 카이사르의 연인이 된다. 그녀에게 반한 카이사르가 여왕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다시 왕으로 등극시켜준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정적들에 의해 암살당하자 그 뒤로 안토니우스가 최고의 권력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당대 최고의 두 권력자를 사랑에 눈멀게 만든 일은 예사롭지 않다. 안토니우스는 결혼 선물로 오리엔트 지방의 통치권을 그녀에게 안겨 줌으로 지중해 중심 국가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의 여왕이 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카이사르의 상속자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이들을 탕아와 창녀로 매도하며 악티움해전을 발발시켰고, 이 전쟁에서 안토니우스가 패하자 자결했고, 그녀 역시 침실에 독사를 풀어 자살하면서 소설 같았던 일생은 막을 내린다.

통설로 알고 있었던 클레오파트라의 자살설을 뒤집고 이번에 아편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한 시대의 인물들은 죽음조차도 항상 의문부호로 남기 마련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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