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도 민심이 빨리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민심이란 그렇게도 혹독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으니 무엇인가 새겨봐야 할 요소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위(行爲)를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행위와 불필요한 행위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불필요한 행위부터 살펴보자. 인간은 자기에게마저도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나쁜 습관 때문에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그런 행위를 저지르고 마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필요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남에게 불편하게 한다든지 귀찮게 하는 행위일 것이다.
다음으로 가장 불필요한 행위는 남에게 해악(害惡)을 끼치는 행위로서 범죄 행위 같은 것이다. 범죄에는 가벼운 경범죄로부터 절도죄 강도죄 살인죄 미성년 성범죄 등 인간으로서 용납되지 못할 행위도 있다.
필요한 행위도 자기의 생존을 위해 하는 행위 즉 의식주(衣食住) 등의 자기의 필요에 인한 행위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 나은 것으로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일 것이다.
교통법규를 지킨다든지 길거리에 담배공초를 버리지 않는 일, 공중질서를 지킨다든지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행위 등 사회 도덕적 행위와, 부모자식과 형제자매와 같은 사이에서 지켜할 인륜 도덕적 행위일 것이다. 이런 행위는 남을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필요불가결한 행위들인 것이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로서 한층 더 상위개념(上位槪念)으로는 남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행위일 것이다. 사회봉사활동, 남을 살리려다 자기가 희생되는 일,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행위들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민심에게 그 고마움이 깊이 새겨져 있을 때 그것은 역사적으로 오래 오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많은 업적 중에서도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므로'의 사상에서 백성을 끔찍이 어여삐 여겨 창제하신 '한글'은 우리나라 발전의 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로서 우리국민들의 존경은 물론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부족이 그들의 문자로 차용(借用)하게 될 만큼 불후(不朽)의 고마운 행위이다.
임진왜란 때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애국신념으로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행위 등은 민심으로 하여금 고마움을 느끼게 하여 영원히 잊지 못 하게 하는 숭고(崇古)한 '고마운 행위'의 극치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를 보면 자기들만을 위해 필요한 행위 즉 당리당략(黨利黨略)은 있으나 남(국민)을 위한 행위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있고,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공중제비도 마다 않으며, 여당은 또한 스스로의 몸보신과 다수 의석에 안주하여 민생을 외면한 채 국민에게 고마운 행위는커녕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행위마저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소견임을 전제로 하여 말하고자 한다.
6·2 지방선거에서는 현 정권의 747(7% 성장, 4만 불 국민소득, 7번째 경제대국) 대통령 선거공약의 실현성이 보이지 않는데서 오는 민심의 판단일 것이며, 7·28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는 지방선거를 휩쓴 야당이 민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성급한 세종시 원안 복귀, 무비판적인 4대강 반대, 심지어는 어린 초등학생에게까지 시위의 자유를 주겠다는 등 민심을 실망시키고 고마움은 물론 필요하다고도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정치에서는 민심은 '필요한 만큼 보다 고마운 만큼'을 갈망(渴望)하면서 정치를 느끼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민심은 천심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