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년 농사 중 가장 한가할 때가 백중부터 추석 때까지다. 따라서 이 시기에 조상묘를 둘러보고 벌초한다.
이제부터는 호미 쓸 일이 없어 깨끗이 씻는다고 해서 ‘호미씻이’라하고 했고, 문헌상에는 세서연(洗鋤宴)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중날 부잣집에서는 백가지 나물반찬을 해먹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그렇게 장만할 수 없으니까 가지의 껍질을 벗겨낸 흰가지(白茄子) 나물로 이를 대신했다. 참으로 절묘한 지혜다.
백중은 머슴날이다. 머슴에게 술과 음식은 물론이고 휴가와 함께 보너스 성격의 돈을 주는데 이를 두고‘백중돈 탄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근로자의 날’과 같은 성격이다.
동네에서는 그해 농사가 가장 잘되어 장원으로 뽑힌 집에서는 머슴을 황소에 태우고 풍악을 울리며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녔다. 머슴 가운데 노총각이나 홀아비가 있으면 마땅한 짝을 골라 장가들게 했다. 이를 두고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는 말이 생겼다.
돈이 풀리니까 자연스럽게 백중 전후에 ‘백중장(百中場)’이 열린다. 이날은 다른 장(場)과 달리 여러 가지 놀이와 노름이 벌어지는 난장으로 조선 말엽까지만 해도 중부이남 지역 대부분에서 행해진 큰 행사였다. 밀양(密陽)은 아직까지 백중놀이가 전해지고 있다.
백중날 빠지지 않는 음식 중에 하나가 ‘개장국’이다. 더위로 인해 약해진 몸을 다스리는 데는 개고기만한 게 없다. 집집마다 개 한 마리쯤은 길렀다가 백중 때 몸보신용으로 쓰였다. 남정네들이 마을 어귀에 모여 개장국 파티가 벌어질 때 아낙들은 가정에서 밀가루로 만든 밀전병과 밀개떡을 해 먹었고, 호박이 제철이므로 호박부침개가 별미였다.
백중은 우리 문화 중에서도 명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