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찾은 장승포는 제2의 고향"
"전쟁통에 찾은 장승포는 제2의 고향"
  • 이영주 기자
  • 승인 2010.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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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남 철수 배 안에서 출생한 이경필씨

1950년 대규모 흥남철수를 담당했던 선박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서 철수 도중   5명의 아이가 탄생한다.

그 중의 한 명이 이경필씨다. 이씨는 6. 25  60주년에 맞게 올해로 60살을 맞았다. 장승포동에서 현재 수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순 없지만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미군들이 태어난 5명의 아이들을 가리켜 '김치 파이브'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지난 24일 장승포가축병원에서 만난 이경필씨가 한 권의 앨범을 꺼내 보였다. 사진 속에는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이경필 씨를 임신한 채 승선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50년 12월 22일 흥남부두에는 연합군 장병 10만5,000명과 약 10만명의 북한 주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  바로 자유의 땅 '남한'이었다. 그때 등장한 배가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화물선이었던 이 배의 승선 정원은 59명. 그러나 이때 승선한 사람은 1만 4천명이나 됐다. 정원의 230배가 넘는 인원이 조그만 배에 몸을 싣고 남한으로의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다.

이경필씨는 그 악몽 같은 3일 중 12월 25일 태어났다. 모두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함흥 사람, 아버지는 흥남 분이었습니다. 잠시만 남한에 피난 가 있으면 금방 통일이 될 줄 알았다고 하셨어요. 7년전 작고하신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고향을 그리워 하셨습니다."

가축병원을 운영하며 수의사로 살고 있는 이씨는 처음 병원을 개설했을 때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운영하던 사진관 역시 '평화 사진관.' 형 역시도 '평화 식당'을 운영하며 장승포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이경필씨는 당시 굶주린 피난민들에게 장승포 사람들이 배풀어 주었던 온정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했다. 전쟁통이었고 너나 없이 힘들고 헐벗었을 상황에 장승포 사람들은 피난민들을 거두고 보살펴 주었다. 그렇게해서 이경필씨 일가 역시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

본인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걸 알고 있냐고 묻자 이경필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꼭 보러 가고 싶다'며 어디서 표를 구하면 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장승포를 통해 들어왔던 많은 피난민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살아갔습니다. 그 분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찾는 곳이 장승포입니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우리가 살고 있는 거제 장승포에는 이념을 뛰어 넘은 기적 같은 온정이 펼쳐졌다. 그리고 지금 장승포에는 '빅토리의 호의 김치 파이브' 이경필 씨가 그 존재만으로 기적의 순간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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