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포방비대 왜곡과진실④]송진포주민, '일제만행' 창원감리에 소장
[송진포방비대 왜곡과진실④]송진포주민, '일제만행' 창원감리에 소장
  • 거제신문
  • 승인 201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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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생 부산경남사학회 연구원

1904년 3월 30일 권중훈 군수는 관찰사 민형식에게 "일본군함 5척이 송진포에 들어와 포대를 건설하고 민가와 전답을 억지로 점령해 강매한다"고 하며, 설령 병대가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기회를 봐서 취한다 할지라도 일본공사가 우리정부와 외부에 요청하고 승인 받은 후 權占해야 친구사이의 정분과 약장(約章·약속한 법)에 타당하거늘 이번 강점이 괴이하고 의심스럽다는 내용을 내부대신 이도재에게 보냈다. 이도재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외부대신 김가진에게 즉각 알렸다(內部來去文, 1904. 4. 30).

하지만 권중훈과 민형식은 일본군의 송진포 무단 점령을 정부에 계속 보고서를 제출하였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이미 한국정부는 친일파 고관직에 의해 실권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일제, 송진포 점령에 한국관리 출입 막아

1904년 5월 8일 경남도관찰사 김학수는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장목면 송진포 정동리 부근 각 마을 및 동부면 탑포 부근의 마을 등지에 일본군이 논밭을 점령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아서 거제군수가 보고했다고 전달했다.

김 관찰사는 거제군에게 일본군에 의해 점령한 주택, 논밭의 숫자와 집주인의 성명 등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박재순은 김 관찰사에게 정부에서 모두 가격평가를 거쳐 처리할 것이니 주민들을 위로하고 흩어지지 않도록 해당 거제군수에게 전달하라고 명령했다.

1904년 5월 17일 창원감리 이태정은 외무대신 이하영에게 거제군 송진포에 일본 영사가 와서 백성들의 논밭을 수용하고서는 백성들을 쫓으려한다고 일제의 만행을 보고했다. 보고서의 내용에 보면, 송진포에 마산항 주재 일본 영사가 와서 '백성들의 논밭을 밭의 1두락 15냥, 논의 1두락 45냥씩 보상하고 수용하겠다며 이 일은 이미 양국 의정서를 거쳐 인준을 받은 바이다'라고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마산주재 미우라 영사는 창원감리 직원에게 '너희들은 별도의 규칙도 없이 함부로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한국관리들의 개입을 막았다.

송진포 주민들은 "바야흐로 농사철에 논밭과 집까지 가져가겠다니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으며 하루라도 지켜내기 어려우니 정부에서 방편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소장을 창원감리에 보냈다.

이 시기는 송진포 외에도 웅천, 칠원, 진남군 등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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