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경찰들에겐 가장 힘든 때다.
거제경찰서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근무가
이어지고 있는
신현지구대(대장 서정숙)를 찾아 그들과 신현읍의 밤을 함께 했다.
시민들에겐 세밑 밤이 재밌고 즐겁지만 경찰들에게는
힘겹고 짜증나는 밤이었다.
휘청이는 세밑, 당신이 잠든 사이에...
# 사고·화재신고는 줄을 잇고…
서정숙 지구대장과 미리 약속해 놓았던 지난 15일 저녁 6시30분 신현지구대를 찾았다. 서정숙 대장의 주재로 연말연시 특별방범활동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단단히 각오부터 다져야 했다. 휴일이 시작되는 금요일에다 각종 행사가 많아 취객들의 난동이 예상된다며 시민의 안전은 물론 경찰들의 안전에도 심혈을 기울일 것을 서 대장이 주문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고 이날 밤샘근무를 책임진 신현지구대 1팀(팀장 김일규 경위·53)은 모두 9명. 하지만 실제 근무인원은 휴무·휴가 등으로 7명에 불과했다.
7명의 경찰관이 하루 유동인구 10만명이 넘는 신현읍의 치안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일규 경위는 부족한 경찰력이지만 순찰차 2대에 4명, 상황근무 2명, 민원 등 피해조사 1명을 배치하고, 본격적인 밤샘근무에 나섰다.
김 경위는 “최소 11명 정도의 인원이 있어야 제대로 된 근무가 가능하다”면서 “적은 인원으로 넓은 지역을 담당하다보니 신고사건 처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밤 근무에 들어서자마자 취객이 신현지구대로 들어선다. 경찰들이 “어떤 일로 찾아왔냐”며 묻는데도 취객은 횡설수설이다.
취객을 상황 근무자에게 맡기고 순찰차 2대와 4명의 경찰관과 함께 음주단속을 위해 거제시 법원으로 향했다.
단속을 시작한 것은 단속하기에는 이른 저녁 7시30분께. 한 명도 없을 것 같았던 음주운전자가 8시10분 적발됐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1을 넘은 이 운전자는 무면허였다.
박희원 경사(44)는 “비교적 신고 전화가 없을 때 음주단속을 실시하지만 사건이나 화재, 교통사고 등의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출동해야 한다”면서 “지구대 인원으로 음주단속까지 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음주단속을 시작한지 1시간여가 지난 8시30분께, 여객선터미널에서 화재신고가 들어왔다.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방파제에 쌓아둔 그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번지고 있었다.
구경하는 시민들을 저지하며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경찰관들은 소방차가 도착하자 소방호스를 함께 나르며 화재 진압에 나섰다.
화재 뒷정리를 끝내고 9시께 다시 신현지구대로 돌아왔다. 출동 전 얼굴을 익혔던 취객이 지금까지 있지 않는가. 2시간이 넘도록 지구대에서 경찰관들의 속을 긁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황배연 경사(42)는 “12월 들어 취객들이 지구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이 하루 평균 4-5건”이라면서 “업무가 밀려 정신이 없을 때 취객들까지 소동을 부리면 정말 난감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취객은 공무집행방해로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좀 쉴까 했지만 지구대 전화벨은 쉴새없이 울려댔다.
# 지구대는 취객들이 접수(?)
저녁 9시가 넘어서자 경찰관들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본격적인 1라운드 시작’이라는 김 경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술에 취한 시민 2명이 지구대로 들이 닥쳤다.
택시비가 없다며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지구대까지 오게 된 것. 택시 기사들도 이런 일엔 익숙한 듯 취객을 지구대에 떠넘긴 뒤 유유히 사라졌고 지구대는 또 다시 취객에게 접수(?)됐다.
9시20분 양정리 해명마을에서 절도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으로 향했다. 술에 취한 신고자는 자신이 모아 논 고물을 마을 사람이 훔쳐갔으니 빨리 잡아들이라고 성화였다.
신고가 들어와 출동은 했지만 너무 억지였다. 내일 낮에 다시 조사하러 오겠다고 신고자를 겨우 설득시킨 경찰관은 중곡마을을 한바퀴 돌아 지구대로 돌아왔다.
10시가 넘자 본격적으로 취객들의 난동 신고가 줄을 이었다. 대부분이 술집과 주점에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술집은 취객들과 종업원들의 욕설과 고성으로 엉망진창이었다.
경찰관들은 시민들의 치안뿐만 아니라 술집업주와 취객과의 중재자 역할도 하고 있었다.
취객들의 난동신고가 이어지면서 3-4건씩 밀리는
상황이 계속됐다. 술 취한 시민들의 지구대 방문(?)도 꾸준했다.
신고된 술집으로 향하던 도중 새거제주유소 앞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무선이 떨어졌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도착한 사고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승용차 2대가 부딪쳐 14번 국도를 막고 있었고, 차량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경광등으로 차량을 통제하며 렉카를 이용, 신속히 사고차량을 갓길로 옮긴 후 사고 운전자와 함께 지구대로 향했다. 순간 술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11시30분께 도착한 지구대는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다. 걸려오는 신고 전화와 취객들의 난동으로 업무는 거의 마비상태였다.
지구대 바닥에 침을 뱉고,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하고, 의자에 드러눕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늘 있어왔던 일인 듯 경찰관들은
익숙하게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취객들의 난동을 알리는 신고전화는 계속되고 있다.
황영문 경장(37)은 “술값 시비와 무임승차 등 술에 관계된 사건이 신고의 80% 정도”라며 “지구대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단골 취객이 4-5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12시30분께 지구대에 잠깐의 평온이 찾아왔다. 경찰관들과 만두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밤샘 근무, 특히 신현지구대 근무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원두 경장(32)은 “힘든 만큼 일도 빨리 배울 수 있고 보람도 크다”면서 “내가 선택한 일인만큼 최선을 다해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피곤과 함께 새벽동이 트고…
12시45분. 한 시민이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누워있다는 신고를 알리는 전화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 꿀맛 같은 휴식도 잠깐, 신현지구대 밤샘근무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경찰관들이 서둘러 출동했다.
평온하던 지구대에 또 다시 취객들이 찾아왔다. 취객엔 남녀가 따로 없다. 화장실을 찾아 지구대를 방문하는 취객들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새벽 2시가 넘을 때까지 경찰관들은 담배한대 피울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출동의 연속이었다. 술에 취해 휘청대는 신현읍은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지구대를 찾는 취객들의 방문도 여전했다.
2시5분께 고현시장에서 70대 노인이 취객에게 맞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급히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노인의 고함으로 떠나갈 듯했다.
지구대에 도착해서도 노인은 분을 참지 못했다. 진단서를 끊어 고소하겠다며 취객의 얼굴을 후려쳤다. 제대로 말도 못하는 취객은 소파에 앉아 횡설수설이다.
2시30분, 갑자기 지구대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신현 주공아파트 앞 음주단속에 적발된 시민 5명이 지구대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취객과 음주측정을 하는 시민들로 지구대는 금새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연신 물을 들이키는 사람,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측정 결과 1명은 훈방, 4명은 면허정지였다. 경찰은 혈액채취를 요구한 여성음주운전자를 백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를 훌쩍 넘어 새벽 4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경찰관들의 얼굴에도 피곤한 빛이 역력하다. 그래도 방범순찰을 위해 다시 순찰차에 올랐다. 이렇게 전쟁 같은 하루가 어느덧 흘러가고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김일규 경위는 “새벽녘 편안히 잠든 주택가를 순찰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면서 “경찰이라 그런지 도둑이나 범죄자를 잡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