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금융사기 “눈뜨고 당한다”
교묘한 금융사기 “눈뜨고 당한다”
  • 백승태 기자
  • 승인 2006.12.28
  • 호수 1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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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좋은 거제, 다양한 수법 동원 금융사기 천국(?)

개인정보 알아내 돈 빼가는 ‘보이스 피싱’ 기승

금융감독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검찰청 등 공공기관을 사칭해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돈을 이체받아 떼어먹는 사기사건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경기가 좋은 지역으로 알려진 거제는 이 같은 ‘보이스 피싱(개인정보를 알아내 돈을 빼가는 수법)’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상천외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활용하는 등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여기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수술비를 보내라’는 등 부모의 자식 사랑을 악용해 돈을 뜯어내는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보이스 피싱 수법이 거제에서 모두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연말을 맞아 피해사례는 더욱 급증하고 있지만 경찰은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하고도 부끄러워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언론보도와 국세 당국의 홍보로 이 같은 사기사건이 널리 알려지고, 은행마다 안내문을 붙여놓고 주의를 촉구하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당하는 피해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지며 해외에서 주도면밀하게 기획돼 진행, 알고도 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또 각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금융기관 사칭 및 카드연체 결제 사기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으니 관련된 전화를 받게 되면 곧바로 문의해달라”는 주의내용을 담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일제히 발송했다.

ARS 활용 등 범죄 지능화

범죄 용의자들은 주로 ARS 시스템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화를 건 뒤 공공기관 또는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해 여러 가지 허위사실을 설명하고 문의사항이 있으면 9번을 누르도록 안내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회사를 사칭할 경우 안내멘트로 ‘카드대금이 연체되었다’ 또는 ‘신용카드로 구입한 물품대금의 결제가 잘못 되었다’ 등을 이용하고, 검찰청이나 경찰을 사칭할 경우에는 ‘사기사건에 연루되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급하게 수술이 필요하다’ 등이며 피해자에게 겁을 줘 현금지급기에서 계좌이체를 유도한다.

피해자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송금’ 개념을 계좌이체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수법이다.

특히 피해자들은 범인들이 ‘인증’을 한다며 불러주는 ‘인증번호’를 입력하지만 실제 이 인증번호는 피해자들이 사기범들에게 넘겨주는 인출금액이다.

사기범들은 이 인증번호가 자동이체되는 금액이라는 사실을 속이기 위해 숫자를 한 단위씩  알려준다. 인증번호가 2345678번이면 2백34만5천6백78원이 송금되는 셈이다.

경찰은 전화 발신자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역추적 하지만 발신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확인되는 경우도 외국 회사의 회선으로 나타나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자동이체 된 예금통장도 대포통장(타인 명의로 만든 불법 통장)일뿐더러 임금되는 즉시 인출해 가는 바람에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 하고있다.

◆국민건강보험료 환급받으세요

신현읍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 14일 휴대전화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인데 보험금이 많이 납부됐으니 환급받으세요”라는 ARS(자동응답장치) 메시지를 받고 전화안내에 따라 시내 한 은행을 찾았다.

은행에 도착해 현금인출기(CD) 앞에 서자마자 전화가 걸려왔고 안내원의 요구에 따라 현금카드를 넣고 불러주는 숫자대로 버튼을 눌러가며 환급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는 결제금을 환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론 A씨의 계좌에서 사기단의 대포통장으로 돈을 송금하는 순서였다. A씨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이미 통장에서 3백50만원이 빠져나간 뒤였다.

40대 중반 B씨(신현읍)는 20일 국세청으로부터 보험료를 환급 받으라는 전화를 받고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에 도착하자 곧바로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안내전화에 따라 CD기 앞에서 환급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러나 B씨의 신용카드는 CD를 이용한 자동이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B씨는 안내원의 요구에 따라 자동이체가 가능하도록 은행측에 ‘자동화 이용 지급 등록’을 신청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은행 직원의 확인으로 다행히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옥포에 사는 50대 주부 C모씨는 지난 20일 부산의 D병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학생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인사불성이며 전화조차 받지 못한다. 급하게 수술을 해야하는데 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동의한다면 우선 수술비 2백만원을 송금해라”며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C씨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들의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급하게 2백만원을 구해 범인이 불러준 계좌번호대로 입금시켰다. 

C씨는 계속 아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2시간이 지난 후에야 통화가 가능했고 모든 것이 사기임을 뒤늦게 알았다. 또 한번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범인은 범행을 위해 먼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과 잘 아는 사이라고 속인 후 “거제도 집에 중요한 문제가 생겼으니 전화를 받지 말고 2시간 정도 전원을 꺼둬라”고 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수술비 2백만원은 범인의 손에 넘어간 후였다.

쓰지않던 신용카드에서 2백40만원이 결제됐는데

능포동의 주부 L모씨(37)는 지난 11일 휴대전화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금융결제원인데요, BC카드 갖고 계시죠, 거의 쓰지 않던 이 카드에서 노트북값으로 2백40만원이 결제됐습니다, BC카드사와 연결하려면 9번을 눌러 상담원과 상담해보세요”라고 말해 의심없이 9번을 눌렀다.

BC카드 상담원이라는 여자가 “실명확인이 필요하니 주민등록번호를 불러 달라”고 해 조금 미심쩍은 면도 없지 않았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줬다고 한다.

12월4일 서울 한 컴퓨터 매장에서 노트북 2백40만원이 결제됐다고 확인해 준 상담원은 결제은행은 무엇이며, 2백40만원이 들었느냐고 물어와 우체국 통장인데 2백40만원 이상 예금돼 있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2백40만원은 금융결제원 통장에 입금하고, 나머지 돈은 다른 통장으로 옮기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서 금융결제원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L씨는 급한 마음에 우체국으로가 불러준 계좌번호로 2백40만원을 입금하고, 나머지 돈은 다른 통장으로 옮겼다.

집으로 돌아온 L씨는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BC카드에 확인해 본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고, 사기임을 알게됐다.

휴대전화에 찍힌 금융결제원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 L씨는 깜짝 놀랐다. 금융결제원이 아닌 BC카드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졌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전화를 해보니 서울 모 경찰서 이형사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이형사라고만 말하고는 다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는 것이다. L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 이렇게 대응하라

공공기관을 사칭해 ARS 전화로 이름과 주민번호, 계좌번호, 통장 잔액 등을 알려달라고 하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미심쩍은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요구한 뒤 다시 걸겠다고 하는 것도 피해를 막는 좋은 예방책이다. 무심코 주민번호나 개인정보를 사기범들에게 알려줬을 경우에는 거래은행을 방문해 이 사실을 전파하는 것도 추가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 보이스 피싱

개인정보와 낚시를 합성한 조어인 기존 ‘피싱’(phishing) 수법에 음성을 덧붙인 것.
피싱은 신용카드 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알아내 범죄에 이용하는 사기수법으로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은 전화를 통한 피싱사기 수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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