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는 다시 남으로 거제와 마주하는 가덕도 사이로 진해만을 거쳐 견내량을 빠져 나가 통영을 거쳐 한려수도의 굽이를 따라 흐른다. 한려수도의 짙푸른 시작과 감동은 거제 해금강이 첨단이다.
거기로부터 남쪽의 여차 해안과 대소병대도, 매물도와 통영의 미륵도와 사량도를 지나면 남해를 거쳐 여수에 이르는 수려한 바닷길이 어우러져 있다.
동아시아에 있어 천혜의 관문인 부산과, 부산을 비단길처럼 이어져 펼친 크고 작은 섬들, 어느새 세계의 으뜸을 자랑하는 조선소(造船所)의 도크들이 우뚝우뚝 위용을 자랑하고 해양관광의 보고(寶庫)들이 가슴을 열기 시작하는 곳이 남해안의 현주소다.
지금 이 남해안이 술렁이고 있다. 해상과 해저를 넘나들며 반도와 맞닿은 가장 큰 섬과 부산이 자동차로 이어지고, 그 한가운데를 은빛 반짝이는 날개를 드리우고 크고 작은 항공기들이 찾아든다.
야심찬 책략가들은 현해탄의 심해를 뚫어 거제를 거쳐 한반도를 관통하는 엄청난 동맥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 유배와 고립의 변방으로 수탈과 재해의 무력감에서 신음했던 역사의 공간이 변화와 번영의 기지개를 활짝 펼 태세이다.
그리고 이 기지개를 펼칠 사람들의 지혜와 힘을 기다리고 있다. 보다 멀리서, 보다 높은 곳에서, 보다 넓고, 담대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소중한 남해안의 과제를 바라보고, 진단하며, 처방을 서두를 때가 지금이다.
모두 그런 마음으로 발 벗고 나설 때가 왔다. 비좁은 마음으로 ‘니 동네 내 동네’를 따지고 경계와 괄시의 선을 아무렇게 그어 버리던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합포와 마산이, 진해와 창원이 의창과 어우러져 역사 속의 거대한 창원으로 되돌아 뭉치고, 부산과 거제와 통영이 어우러져 남해를 둘러 싸 활기를 불어넣는 남해안 시대의 꿈이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다.
아직도 이 광경에 눈을 감고 저 부끄러운 식민지 시대에 그어 놓은 행정구역의 선을 옹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금싸라기 같은 황금벌판에 공항을 만들자고 우기는 사람들은 이 남해안의 꿈을 꾸지 못한다.
제 살을 헐구고, 농토를 짓이겨 가야산 너머의 사람들에게 공항을 제공하자고 우기는 사람들은 지금 동아시아의 새로운 허브가 될 가덕신공항의 가치를 바라보지 못한다.
논밭을 내버려가며 금수 같은 산천을 뭉개어 귀를 막고 하늘을 바라볼 게 아니라 지금 세계의 추세처럼 새로운 활력이 열리는 바닷길을 열어 새로운 관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아직은 산업화의 어깨 너머로 해상국립공원의 감시 아래 관광자원의 불모지로 남아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수려한 해안들을 관광특구로 일깨워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선망의 땅으로 바꾸어 나갈 과제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것이 남해안 시대를 시작하는 단초이자 화두다.
부산과 거제와 통영으로부터 저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의 올곧은 사람들이 모두 이 남해안 시대의 포럼으로 모여 들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생애는 곧 바로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새롭고 번영된 가치를 물려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이 남해안의 중심을 뱃길로 지나면서 그 옛날 고립과 단절의 험난한 파도 위를 몇 시간이고 시달려야 했던 질곡의 세월을 이제 벗어나고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있다.
남해안의 새로운 시대가 단단한 팔뚝을 마주 잡고 이어지는 거가대교의 위용을 바라보면서 이 새로운 시대의 가교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와 과제를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