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데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온천목욕을 가게 되면서 그 편도 40분 동안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 오늘은 모처럼 빈손으로 나섰다가 편지함에 꽂힌 거제신문을 빼 들었다.
아예 1면부터 꼼꼼히 훑어가기로 하고 전동차 안에서 신문 첫 면부터 읽은 것이 '진시황'이고 '서불'이다.
거가대교 관계는 또 접어두고라도 대마도를 잇는 해저터널이며 제법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중간쯤이었을까, 상단 전면을 차지한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바위산은 내 눈에 너무 익은 그 산이었다.
한복판의 '休~'자보다도 먼저 눈에 띈 것이 '둔덕면 산방리 산방산' 제목. 나는 안경을 추스르고 그 글 구석구석을 훑었다. 글의 문맥은 매끄러운데 읽고 난 뒷맛은 차라리 소루하다고 할 수밖에. 그 산은 내 안티 봉 산이다.
연전에는 그 산에 얽힌 내 딴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료 하나 해 신문에 보냈건만, 빛을 보지 못하여 더욱 이 글을 쓰게 됐는지 모른다.
그 산행기 중간에는 삼신굴을 거쳐 정상에 오르기 10m 전에 '오색터'가 나오고 '무지개터'가 함께 교차하는데다 그 주위에 기우제단이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오색터'에서 무제를 지냈다 운운은 차라리 '무지개터(무지터)'라면 모를까 이치에 닿지 않다.
우선 '무지개터'는 '무지터'의 오류이다. 언제부터 '무지터'가 '무지개터'로 둔갑한 것인지는 제위의 하회에 맡기기로 하더라도, 오직 수년 전 내가 향리를 찾아 마을 앞 저수지 둑 아래 삼가름 안내판에서 '무지개터'를 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면사무소에 들러 '무지터'로 정정하라 신신당부한 후론 까마득히 잊고 있은 문제였다.
그이름이 너무 황당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기원전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 그야말로 불로초 구하러 동방의 미지 섬에 선남선녀를 보낸 진시황제 족적을 역추적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당장 내 코앞에 불어 닥친 급선무 중 급선무 아닌가?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 했던가. 설혹 사람들이 무식하여 그리 되었다손, 그게 어느 특정인을 용납하고 아니고 할 문제인가!
옛날에는 한발이 닥쳐도 고작 둠벙을 파고 하늘만 쳐다보고 비오기만 빌었다. 그것이 치수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었다.
고을 원이 가뭄에 영산대처 물터를 찾아 제사 곧 '무제(기우제)'를 지내는 건 당연지사요, 선정의 표징이기도 했겠다. 그 '무지게터'를 속전에서 '모지터'라 해왔는데 언제 그 끝에 '개'자 하나가 덧붙였는지, 무제를 모르는 이들의 소행임이 분명하다.
기자는 불과 몇 십미터 밖에 '무지개터'라 한 '무지터'를 두고 가보지 못했기 망정이지, 지금도 실꾸리를 풀면 갱이바다에 닿는다는 물이 그 바위틈 구석진 샘에 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그 '무지터'란 이름이 약여히 실감될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 암벽을 타고 북으로 돌아 나온 100m허 북봉과 남봉 사이 아궁이('큰문아궁이')에 '오색터'라 한 '오색토'가 있다. 지금도 풀을 헤치면 오색의 흙이 깊이 파인 그곳은 묘를 쓰면 가뭄에도 그 집 전답만 물이 안 마른다는 풍수설을 타고 그래서 사람들은 날이 가물면 거기 찾아가 들어선 분묘라도 없는지 감시하고 파내었다 한다.
나는 지금도 소싯적 거기에서 붉은 그곳 흙의 색깔을 가늠해 본 기억이 있다. 아무튼 부형들 입에서 불리던 '오색토'란 이름이 생생하기만 한데 왜 어느 반풍수에 의해 '오색터'란 모호한 이름으로 탈바꿈하였더란 말인가? '무지터'를 '무지개터'로 일컬음에 이르러선 차라리 포복절도할 일.
기자가 산방산을 세 봉우리로 말한 것은 맞다(나는 전술한-기고의 글에서 그래서 산방산의 딴 이름이 삼봉산(三峰山)이라는 유래를 누누이 밝혔건만-). 한 발 더 나아가 보다 세 봉우리와 그 골짝을 어우르는 산의 전체적 경개와 곳곳에 숨은 승경과 유서, 그리고 이 명산이 한려수도 입구를 차지하는 인근에서는 드문 특출한 암산으로도 국립공원일환으로 시급히 보전돼야 할 필요성 같은 것을 역설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다.
요컨대, 뜬구름 잡듯이 하는 과도기적 급조된 어느 행정적 행태일지라도 아무런 선의로도 용허되어선 안 되고 용납해서도 안 된다. 통계에 정확을 기하듯이, 아니 그 이상 눈으로만 아닌 기록적 사료에 더욱 귀를 기울어야 할 이유이다.
한 사람의 태만이나 일시적 시행착오로 자손만대 만인에게 물러줄 재산인 내 고장의 명소 하나인들 그 고증에 서어가 있어서 쓰겠는가!
끝의 칼럼 말마따나 소중한 우리 유산인 우리말 우리글 전승 못지않게 내가 먼저 내 고장 지명이나 연고의 정확한 전승을 위하여 그 와전을 막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