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바라신 세상
예수님이 바라신 세상
  • 거제신문
  • 승인 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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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칠 화평교회 담임목사

"토끼와 거북이가 손을 잡고 결승점에 들어오는 세상!"

아이에게 '토끼와 거북이' 동화를 읽어 주던 어느 엄마의 조그만 소원이었단다.

오늘은 비록 토끼 이겨라! 거북이 이겨라! 응원의 소리가 방앗간의 원동기 소리만큼이나 크게 울리고 있지만 자기의 읽어 주는 동화를 듣는 이 아이가 뛰어다닐 세상만은 토끼와 거북이가 손을 잡고 함께 좋아하는 세상이 되기를 천진한 엄마는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을 처음 만난 갈릴리 바다에서도, 남자만 오 천 명이나 되는 허다한 무리가 모인 빈들에서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외치고 또 외치는 맹인을  만났을 때도 예수님의 마음을 들끓게 했던, 예수님이 바라신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약성경의 보고 산상 보훈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주님이 바라셨던 첫 번째 세상은 율법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었다. 당시 율법 준수를 최고의 명예로 여기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살인이 아니라 미움이 문제이며 간음이 문제가 아니라 여자를 보고 품는 음욕이 문제이며 도둑질이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물건을 보고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이 더 큰 문제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는 미움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세상, 더 나아가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되기를 주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 하셨던 것이다.

두 번째는 신앙이 살아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셨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여러 번 "외식하지 말라"고 책망하셨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고, 사람보다는 물질을 더 중히 여기다가 주님께 책망을 받은 것이다.

그런 세상을 향하여 주님은 '물질에 목숨을 바칠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에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외치셨던 것이다.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느냐가 문제였던 것이다. 물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세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거기다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중히 여기는데도 문제가 있다. 신앙이란 진리에 대한 헌신이다. 진리라고 믿는 것이 잘못되었든지 그 헌신이 잘못된다면 그 인생은 오발탄과 같다. 그 신앙이 '바로 된 신앙' '살아있는 신앙'이 되기를 주님은 바라셨던 것이다.

주님이 바라셨던 세 번째 세상은 '좁은 길이 넓은 길'이 되기를 바라셨다. 산상보훈 마지막에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잘 가지않은 길, 즉 남을 비판하기보단 이해해 주고 정죄하기보단 용서해 주는 세상, 하나님과 사람들에게도 무엇을 얻을까 나의 유익을 위해서 어떻게 이용할까가 아니라 도우려하고 섬기려하는 사람이 많아 이제 더 이상 좁은 길이란 이름이 합당치 않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주님은 바라셨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이런 주님의 소망을 제자 된 자들이 이루어주기를 더욱 바라셨다.

①법이  없어도 ②바른 신앙으로 ③섬김과 봉사를 마땅한 의무로 여기는 제자들이 넘치는 거제도, 경치가 좋아서 환상의 섬이 아니라 주님의 꿈같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제도가 되기를 축원하고 또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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