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구멍가게 달랑 하나 있었던 마을에 패밀리마트,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 퓨전 분식집, 불고기집, 해산물 식당, 세탁소, 옷가게, 대형 목욕탕 인 해수탕, 골프용품 가게등 없는 것이 없는 오만가지 가게들이 갑자기 들어서 버렸다. 아이들은 가까운 가게에서 파는 인스턴트 과자,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산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되었는데 이것에 따르는 비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순식간에 변한 환경에 적응을 하다가는 갑자기 변한 환경에 내 자신이 놀랄 때가 가끔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때 일이다. 이웃에 사시던 할머니는 매일아침 소를 산에 풀어 놓고는 저녁에 함께 푼 우리소와 함께 몰아다주면 자기네 집 마구간에 붙들어 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 방학 때 그 할머니 댁 옆 개울가 웅덩이에 하루 종일 멱을 감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할머니 댁이 동네 골목길 연해 있었던지라 때마침 점심을 먹고 계시던 할머니 가족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나를 불렀는데 가보니 마루에서 온 가족들이 밀장국으로 점심을 들고 있었다.
도랑사구에 담은 밀장국을 자기네 식구들에게 모두 배분하고 남아있던 밀장국을 나에게도 사발에 한 그릇 가득 담아주며 "매일 소 찾아 몰아주어서 고맙다. 그동안 보답도 못해 미안했는데 오늘 마침 잘됐구나."하시며 먹으라고 내 놓았다.
종일 멱 감고 놀다가 배가 고프던 차에 게 눈 감추듯 훌쩍 한 그릇을 비우고 난 그 밀장국 맛은 오학년 육반이 되어도 그 맛을 잊지 못하겠다.
이제는 그 할머니, 할머니의 아들 아저씨, 아저씨 처 아주머니도 모두 다 세상을 버렸다.
한국전쟁 때 소개되어 포로수용소 막사를 뜯어 배급받은 목재로 시냇가에 집을 지어 살던 판잣집도 도시화에 밀려 없어진지 오래 되어 흔적조차 없어지고 앞산의 소 놓아먹이던 산은 삼성 12차 아파트에 가려 하늘만 보인다.
어렸을 적 배 고프던 시절 기억의 밀장국 맛은 소를 찾아다 도와주는 것이 고마웠던 할머니 마음처럼 시장끼 가득한 입안에서 손으로 뜯어 넣어 끓인 매끄러운 감촉의 밀장국 건더기 맛깔만이 추억으로 아련할 뿐이고 자장면 길들여진 현재의 아이들은 이 밀장국 맛을 알 수 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