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림들의 요람 '거제향교'
조선시대 유림들의 요람 '거제향교'
  • 배창일 기자
  • 승인 20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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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다시보기⑥]임진왜란때 소실 후 복원…1982년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관리

거제면 서정리에 위치한 거제향교는 조선시대 지방교육을 담당하던 관학교육 기관이다.

현재 중·고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시설로 당시 양반자제들을 대상으로 사서삼경을 비롯해 학령, 사목, 절목 등을 가르쳤다. 거제향교는 1982년 8월2일 지방 유형문화재 제20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거제향교는 문묘대성전을 중심으로 명륜당을 설치해 거제 유생의 강학(책을 읽고 그 뜻을 강론)도장으로 사용됐다. 또 수시로 현령 또는 부사의 정치자문에 응했다.

거제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主壁)으로 5성과 송나라 2현, 신라 2현, 고려 2현을 배사하고, 동과 서무에는 조선조 14현을 종사해 모두 25성현을 향사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중소도시에 주로 사용되던 전학후묘 형태로 대지의 경사를 이용해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일반 강학공간 뒤쪽에 배치해 위엄을 더하고 있다.

거제향교가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자료가 부족하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향교가 불에 타 그 이전의 사실을 알 수 없어 설립 상한 연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경남교육사에서는 임진왜란 전에는 세종14년(1432년) 고현의 도론골(현 거제시청소년수련관 뒤편)에 창건한 것으로 돼 있고, 임진왜란 후에는 광해군으로 기술하고 있다.

향교의 현판문에 따르면 임진왜란때 고현성이 함락되면서 성 밖에 있던 향교는 불탔기 때문에 향교의 그 이전의 사적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거제군지에는 현종 5년(1664년)에 고현에서 거제현아를 거제면(당시 서부면)으로 옮겨올 당시 현령 이동구의 발의로 거제향교가 창건됐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그 이전의 사실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후 거제향교는 1715년, 지금의 반곡서원 서편 도론곡에 이건했고, 철종6년(1855년)에 현재의 위치인 서정리에 이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향교에는 도유사, 제장, 장의, 색장 등의 직원과 향교의 대표인 전교가 있었다. 1970년 전교 윤병재가 주선해 국고보조로 대성전을 보수하고 단청했다. 이후 전교 반희도가 거액을 희사해 풍화루를 보수했고, 전교 원호상의 노력으로 명륜당을 확장·중건했다.

거제향교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현종 11년인 1670년 주조한 청동제기, 용두향로, 주발탕기 등이 100점 가량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놋쇠제기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놋그릇 공출에도 유림들의 항거로 보존될 수 있었다. 주조 된지 300여년이 넘은 놋쇠제기는 섬세하고 우아한 형태가 문화재급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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