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세계 중심에 위치…전통 시조 자연관과 사뭇 달라
무원 김기호 선생은 1912년 거제시 하청면에서 태어나, 1933년에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에는 경성사범 연습과를 졸업한 후, 1935년에 수영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이후 부산 남부민공립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좌천 우편국장을 역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사재를 털어 1946년 하청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51년에는 이 학교를 하청중학교로 창설하고 교장이 되었다.
1953년에는 하청고등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이 되었으며, 이후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후진들의 교육에 헌신하였다.
무원 선생은 이렇게 교육자로서의 외길만을 걸어간 것이 아니라, 1955년 동아일보 35주년 기념 현상문예에 시조 '옹화부'가 당선되었다.
또 1957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靑山曲'이 당선되어 문인의 길도 함께 했다. 이후 다작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선생의 고결한 품격을 닮은 시조들을 발표하여, 1965년에 시조집 '풍란'을 펴냈다.
선생은 평생 단 한 권의 시조집만 펴냈지만, 이 시조집에 실린 작품들이 풍기는 고결한 정신의 높이는 몇 십 권의 시집을 낸 시인들의 높이를 넘어 서 있다.
그가 평생 교육자로서 청렴하게 살다간 정신의 높이가 이 한 권의 시집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의 이러한 시 정신은 옮음과 그름이 혼재되어 있고, 개인적 욕망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후기산업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현대인들에게는 각성의 메세지가 될 뿐만 아니라, 거제지역문학의 뿌리를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다.
이에 무원 선생이 남긴 작품들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지를 몇 회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자연중심의 생태학적 사유와 삶의 실천
무원 선생의 시조집 '풍란'에는 자연을 시적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많다.
'청산곡' '청죽' '야국' '민들레꽃' '거목 앞에' '갈섬' '바위' '풍란' '대화' 등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무원 선생이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은 전통적 시조가 보여주는 자연관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전통적인 시조가 보여주는 자연은 일반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연과 적절한 거리를 가지고 그 자연을 완상하는 어조를 내보인다.
그리고 그 자연 속에 시적 화자의 인생관을 일방적으로 투영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전통 시조에서 보이는 자연의 모습은 여전히 자연을 노래하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놓여있다.
그래서 노래하는 시인의 눈에 비쳐진, 시인이 해석한 자연만이 드러날 뿐이다. 그런데 무원 선생이 보이는 자연의 모습은 인간이 자연 속에 자리해 있다.
즉 인간 중심이 아니라, 자연 중심의 사유를 내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이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자연은 그 각각이 하나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선 그의 데뷔작인 '청산곡'을 통해 이를 살펴본다. <남송우(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청산은 말없어라 얼마로 깊은 하늘/ 가거나 또 오거나 백운도 쉬엄쉬엄/ 청산은 말이 없어라 내 청산에 오도다.// 청산은 말 없어라 일월이 지고 새고/ 억겁 또 소유란들 청산은 말없어라/ 슬카장 가슴을 열어라 내 청산에 오도다. <靑山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