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사는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와 함께 경남 4대 사찰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북사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문헌에 의하면 고려왕조 때 세워진 큰 절이라고 한다.
북사에는 동종이 있었다. 이 종에는 대평 6년 병인(고려 현종 17년·1026년) 9월에 하청 북사의 종을 만들어 달았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종의 크기는 높이 73m, 구경 51.4m, 무게 121근(270㎏)이다. 종의 특징은 9개의 종유(鍾乳)가 상부에 있고, 용두머리에 3개의 기삽(旗揷)을 하고 있다. 당초문과 연화문이 새겨져 있고, 궤좌비천보살상이 양각돼 있다. 조각은 매우 섬세하다.
이 정도 규모의 큰 종을 보유했던 사찰이므로 그 규모 또한 방대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문헌에 의하면 북사의 동종은 현재 일본 사가현 동송군 종촌의 혜일사에 보관되어져 있다고 한다.
일본 응안 7년(고려조 공민왕 7년·1374년) 처음 승낙사에 시입된 각명이 있다. 또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는 기록도 있어 고려 말기 대거 침범한 왜구에 의해 약탈 된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하청 북사는 동종이 주조된 시기나 그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절터에는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에서 비롯한 초석을 확인 할 수 있고, 절 입구에는 부도 1기가 있다. 또 많은 양의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 절이 언제 폐찰됐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절에 빈대가 많아 문을 닫았다고 한다.
북사가 없어진 후 조선 인조 원년(1623년)에 정수사를 지어 승려수가 7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정수사가 폐찰된 뒤 1980년 부산 초읍에 살던 지청숙보살이 광청사를 창건했다.
앵산 절터에는 약수터가 2곳이 있다. 북사지 옆에 있는 약수는 마을사람들의 식수로 사용하고, 광청사 앞 계곡의 약수는 절을 찾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하청 북사지는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209호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