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속에서도 '불변'…'무원'의 자연 중심 삶의 철학 녹아나
'靑山曲'은 무원의 데뷔작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무원 선생의 시적 발원지라 할만하다. 그러므로 이 시는 무원 선생의 시적 토대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첫 데뷔작으로 청산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시적 관심이 자연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말한다. 즉 '靑山曲'을 통해 시인은 그의 시적 사유의 토대와 세계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청산을 노래함으로써 시인의 자연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우선 청산이 보여주는 특징은 <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시인은 각 연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이는 청산이 지닌 본질의 하나로 시인은 청산의 침묵을 노래하고 있다.
1연에서 깊은 하늘의 백운도 쉬엄쉬엄 가거나 오거나 하는 움직임을 보이나, 청산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비시킴으로써 청산의 본질을 부각시킨다. 그러면 <청산은 말 없어라>에 함유된 청산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는 1연에서 노래되는 청산과 대비된 다른 대상들과의 문맥적 관계 속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1연에서 노래되고 있는 대상은 깊은 하늘과 그 하늘 공간을 오가는 백운이다. 즉 1연에서는 하늘이란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백운과 대비해서 청산이 노래되고 있다. 하늘이란 공간적 차원에서 백운의 움직임이 나타나나, 청산은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미가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백운은 하늘이란 공간에서 왔다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청산은 오직 침묵 속에 그 변하지 않는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어 2연에서는 시간 차원에서 이를 노래하고 있다.
2연의 <일월이 지고 새고/ 억겁 또 소유란들> 청산은 말이 없다고 노래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시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청산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강조함이다.
청산의 불변성을 <청산은 말 없어라>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변하지 않는 청산에 시적 화자는 <내 오도다>라고 노래함으로써 시적 화자가 청산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인다.
여기에서 주의깊게 살펴야 할 시어는 <오도다>라는 서술이다. 일반적으로 청산이 인간 앞에 존재해 있으면, 그 청산을 향하여 시적 화자가 나아가는 것이 관습적 행위이다. 그런데 시인은 <내 청산에 오도다>라고 노래한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시적 화자인 <내>와 <청산> 두 주체 사이의 관계성을 밝혀야 한다.
즉 <청산>이 중심주체냐 아니면 <내>가 중심주체냐 하는 문제이다. <내가 청산에 오도다>라는 표현 속에는 청산이 중심이 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청산이 내게 오도다>라는 표현과 비교해보면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청산이 내게 오도다>라는 표현 속에는 분명히 내가 세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심인 내게 청산이 다가온다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청산에 오도다>라는 표현 속에 나타나는 세계의 중심은 청산이 된다. 청산으로 내가 다가가고 있음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단순이 몸만 청산에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한껏 가슴을 열어 다가서는 의지를 보인다. 이는 무원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해방 전에 떠났던 고향으로 돌와보니, 고향의 청산은 여전히 그대로 자연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산과 나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자연의식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생태의식이다. 근대성을 경험한 많은 현대인들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무원 선생은 일찌감치 청산을 대하면서,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자연 중심의 사유를 내보임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자연관을 펼쳐보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관은 「대화」에서 더 내밀하고 구체적인 장면으로 제시되고 있다. <남송우(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