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달려와 숨진 전령의 일화를 마라톤의 기원으로 본다. 따라서 마라톤경기는 승리한 아테네의 축제라면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치욕일 뿐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은 조상의 처절한 패배를 기념하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란은 지난 1974년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종목을 아예 제외시켜 버리기도 했다.
1912년 제5회 스웨덴 스톡홀름 올림픽 때 '일본 마라톤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나쿠리 시조(金栗四三)가 일본선수로는 처음 참가했다.
당시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 68명이 출발했으나 34명이 중도에서 포기할 정도였다.
가나쿠리씨도 열사병으로 중도에서 포기하고 근처 민가에 비틀거리며 들어갔는데 주인의 배려로 실컷 자고 일어나니 대회는 이미 끝나 있었다.
완주하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와 버렸는데 주최측에서는 포기한 34명의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가나쿠리씨만 행방을 알지 못했다.
50년이 지난 후 사라진 전설의 마라토너는 어느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1967년 그의 나이 76세 때 옛날 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골인하는 이벤트를 가짐으로 54년 8개월 6일 5시간 32분 20.3초라는 올림픽 사상 최장기록을 남긴다.
마라톤에서는 신기록이라는 용어가 없다. 뛰어야하는 레이스가 곳에 따라 조건이 다르고 때에 따라 기온의 차가 들쭉날쭉해서 '신기록'보다는 '최고기록'이라고 부른다.
지난 3월 20일에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 마스터스 남자부분 풀코스에 출전하여 우승한 김창원씨는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으로 한국에 왔다가 고국에 내전이 일어나자 귀국하지 못하고 금년 1월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인이다.
창원을 이름으로 하여 현재 경남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라니 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