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고장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고장
  • 거제신문
  • 승인 2011.0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아석 칼럼위원

이미 작고한 분이지만 일찌기 차를 즐기고 후생들에게 차문화를 역설하셨던 분 가운데 금당 최규옹 선생이 계셨다. 세인들이 알기로는 산청의 고옥 한 채를 옮겨다가 부산 송도에서 기거하셨고, 한·일은 물론 한·중 차문화교류에 관한 단체를 이끌기도 하셨다.

그분과 필자는 그다지 좋지않은 언쟁으로 만나게 되었다. 전통적인 우리네의 다례문화를 왜 일본식 다도로만 가르치냐고 항의한 적이 있었고, 완강해 보이시던 그 분은 상당 부분 그 뜻을 받아 들여야겠다고 고증을 찾아가며 전통다례를 연구하기 위해 머리를 서로 맞댄 적이 있기도 했다.

그 분이 해마다 세모를 즈음해서 찾아 뵐때면 앞장 서 가야할 곳이 있노라고 나선 방문지가 이 고장 거제의 양화마을이다. 매년 모신 건 아니지만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한두번 따라 찾은 곳이고, 고향의 이웃마을임에도 그 향취조차 몰랐던 자신이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따라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그 분의 설명에 따르면 우라나라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곳이 양화마을이다. 매화라면 누구나 알듯이 봄의 전령이요, 혹설의 인고를 이겨내는 자연의 섭리를 가르치는 사군자의 첫줄에 자리하는 식물이다.

그런 매화가 어디쯤서, 어떻게 개화하는지 양화마을은 그저 지나치는 세인들이 알 까닭도 없지만 굳이 찾아나선들 애꿎은 손때에 다칠 우려마저 있으니 은밀히 두는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전 남부면 일원에 석곡이 남아 있다고 해서 산중을 헤매었으나 십년이 채 안된 세월동안 석곡의 자취는 사라지고 없었다.

신작로를 따라 트이던 길이 넓어지고, 바다와 바다 밑을 뚫어 도시화가 앞당겨 지고, 전답과 산지가 돈다발로 보이는 세상이 되고보니 매화가 어디서 피든지 이제 계절은 온도계나 TV브라운관에서 들을 수 있는 소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 양화의 매화도 거제시 일운면 양화마을에서 볼 것이 아니라 그런 전파매체에서나 찾을 희귀거리로 묻혀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세인들이 늘 말하는 '따뜻한 남쪽나라'의 대명사가 곧 이 고장이요, 시퍼런 겨울바다의 칼날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기개를 드러내는 선비의 품격이 서린 매화의 의지가 바로 이 토양에서 자리하고 있다면 한번쯤 자연의 긍지와 포만감을 가져 볼 만도 하지 않겠는가.

내게 있어도 그 가치를 모르고, 당신이 가르치고 간 마당에 깨우칠 제자가 없다면 그 산천이 날로 황폐해질 것이요, 우리가 어느새 버린 인정들이 산업화와 도시화의 뒷골목에서 신음할 수 밖에 없다는 걱정이 생겨나는 대목이다. 그러니 올 겨울이 잦아지기 전에 한번쯤 저 등성이를 돌아 언 하늘을 향해 매화 한가지라도 지켜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양화의 매화는 굳이 세상의 질곡을 다 겪었던 어르신의 손끝 너머로 보이는게 아니라 애향심을 지닌 이 땅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젊음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것을 느낄 차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