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 군사 요충지 '장목진 객사'
조선시대 최고 군사 요충지 '장목진 객사'
  • 배창일 기자
  • 승인 2011.0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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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다시보기⑫]도 유형문화재 189호 지정…1982년 전면 해체 통해 복원

▲ 장목진 객사
한려해상의 입구에 자리해 진해만 일대를 방어하고, 대한해협을 바라보기 위한 전략의 요충지. 조선 수군들이 전략을 숙의하고, 상륙 주둔한 곳.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이영남 장군이 거제 옥포해전과 칠천해전의 전략을 숙의했던 장소.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서구마을에 위치한 장목진 객사에 대한 설명이다. 장목진 객사는 조선시대 거제부 소속 7진보 가운데 하나였던 장목포진의 관아의 부속 건물이다.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량문에 따르면 장목면 동구에 있던 것을 서구로 옮겼다고 하며 선조 25년(1592년) 정월 장목 별진장이 진영객사를 건립해 평화축전을 제를 지냈다고 한다.

장목진 객사는 진해를 마주보는 거제의 북단에 위치해 진해항 일대를 방어하고, 대한해협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유인, 척결하는데 좋은 군사적 요충지다.

이 객사는 정조 9년 행별장 이진국이 중건하고, 순조 2년(1802년)에 다시 중수됐지만 건축물 형식은 조선 후기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측에 툇마루를 갖춘 방을 1칸씩 두고, 중앙에 2칸의 마루를 둔 객사의 일반적인 평면형식을 취하고 있다.

높이가 1m가 넘는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세워져 권위적인 입면을 보여주며 외각의 기둥은 배흘림 두리기둥을 하고, 내부는 각주를 세워 내부공간의 실용성을 취하고 있다. 주두 아래 초익공을 둬 공공건물로서의 정직성을 보여준다.

내부에 높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도리 다섯 개로 지붕을 받치는 무고주 오량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지붕은 팔각 기와지붕으로 전면에만 부연을 둬 겹처마를 구성한 것이 특이하다.

장목진 객사는 한일합방 후 1914년 3월부터 장목면사무소로 사용됐다가 이후 서구마을 노인정으로 이용됐다.

1978년 폭풍우에 일부 지붕이 붕괴돼 퇴락직전에 있던 것을 장목주민들이 장목진 객사 복원대책위원회(위원장 김종석 해동병원장)를 조직해 자료조사 등을 통해 지방문화재로 긴급 지정, 보수하게 됐다.

당시 김종석 추진위원장은 자료조사 및 경비 등을 자비로 부담하는 등 문화재 지정과 보수에 이르기까지 큰 힘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건물은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전면적인 해체를 통해 다시 복원됐다. 장목진 객사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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