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똥(梅花)
임금님 똥(梅花)
  • 거제신문
  • 승인 201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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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학교건물은 목조였고 화장실은 본관 뒤쪽에 있었다. 내 기억에 그날 비가 내렸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다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더니 왜 그렇게 핼쑥하냐고 물었다.

나는 설사 때문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나도 요즘 설사가 난다'고 하셨다. 어! 선생님도 똥을 누나? 정말이지 그 때 나는 선생님이 똥 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똥을 누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민초들은 남이 보지 않게 뒷간에서 혼자 일을 보지만, 임금에게는 뒷간이 따로 없고 일종의 이동식 좌변기를 사용했다.

그것도 담당 내시나 지밀상궁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을 봐야했다. 한마디로 용변의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사람이다.

임금의 똥은 그냥 똥이 아니라 거룩한 매화(梅花)라고 부른다. 봄날 매화가 아름답게 흩날리는 모습을 매우(梅雨)라고 하는데 이에 빗대어 매(梅)는 큰 일(大便), 우(雨)는 작은 일(小便)을 상징한다. 따라서 매우는 임금의 용변을 통칭하는 용어다.

본래 이 말은 매회(煤灰)라는 말에서 나왔다. '매회'란 나무를 태운 재를 일컫는데 변기통에 재를 담아오기 때문에 '매회틀'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런 불경스런 말보다는 임금의 똥에서 매화향기가 난다는 뜻으로 '매화'가 되었고, 다시 '매우'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매우틀'은 'ㄷ'자 모양의 나무틀로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우단으로 폭신하게 했고, 안에는 용변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 이를 서랍처럼 꺼낼 수 있다.

임금이 볼일을 보고나면 상궁은 깨끗한 명주수건으로 뒤를 닦아주고, 복이나인(僕伊內人)은 매우틀 안에 든 그릇을 꺼내어 내의원에 가져간다.

내의원 어의들은 눈으로 변의 농도나 색깔을 살피고 입으로 맛을 보아 임금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게 된다.

매화가 한창 지천으로 피었다가 이제 눈이 되어 펄펄 휘날리는 것을 보며 이것이 임금님의 똥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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