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풍수 집안이냐 반식자 우환이냐
반풍수 집안이냐 반식자 우환이냐
  • 거제신문
  • 승인 201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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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두호 시인
견내량 물길을 격하여 지금은 대교가 놓여 육지와 직결되는 그 육붕 한 복판에 도서로서는 보기 드문 분지가 있고 그 분지 중앙으로 올올하게 중천에 솟아오른 돌산이 있다.

거제시 둔덕면에 위치한 해발 507m 산방산(山芳山)이다. 그 자락은 동으로 거제면과 북으로 사등면에 닿아 있다.

중복에 '애바우' 등이 웅크려 그 양측으로 '중산골', '구절골'이 갈려 고려이전부터라 추정되는 절터 유적들이 있다. 산 밑 '절골마을'엔 30~40년대만 해도 20여 가호가 여기저기 취락을 이루고 살았었는데 지금은 겨우 댓집만 옛 터전을 지키며 있다.

그런데 그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산방산하고도 들머리 한 복판에 자리한 '애바우'가 하루아침에 달갑잖은 음양설에 휩싸이게 되었다.

지난 2월18일자 K신문 '주말&엔' 특집란 우람한 남근석 아래 짓눌린 듯 가로로 된 작은 화폭 안에 점선으로 에어진 '병풍바위'와 '애바우' 그 기다란 눈에 익은 산자를 나는 한동안 영문 모르고 들여다보았다.

한 켠에 음와석까지 배치해놓은 사진과 그 기사 모두(冒頭)를 읽으며 나는 내내 억색함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반식자우환(半識者憂患)이라고 했던가, 도대체가 그 '애바우'가 왜 '愛바우'로 변신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임에 어찌 그 산을 모르랴! 그곳에서 몇 대를 이어오며 '애바우'는 '매바우'가 본디 이름이라는 말을 부형의 입을 빌어 누누이 들었었다.

그리고 보면, '애(매)바우'는 북을 향해 깃을 접고 도사린 매의 형상을 빼어 닮았었다.

그런데도 청마문학관에서 주워들었다는 그 기사에 의하면 '애바우'는 '愛바우'로 멀리 5리 허 우두봉 아래 '애애등'과 짝 맞춰진 남근석으로 묘사돼 있었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니던가! 견강부회도 유분수지, 굳이 '애애등' 아니어도 다만 그 '애-'소리  때문에 한자인 '愛'자까지 동원할 줄이야.

'애'는 다 '愛'가 될 수 없듯이 형상조차 주제와는 동떨어진 산을 두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 것 아닌가. 백보를 양보하여 '애바우'가 '매바우'임을 모르고 하는 수작이라 할지라도, 왜 하필 생경한 한자말을 갖다 붙여야 하나?

더욱 일설에는 그 '애(매)바우'등 발치에 언제부턴가 자리한 '윤운장묘'를 쓸 때 묫구덕에서 꿩이 날아 나와 건넌 산에 가 숨었다하여 그 안산이름이 '치은골(雉隱谷)'이 돼 지금도 불리고 있음이 방증이 된다.

가뜩이나 전통적 보전에는 소루하면서 공명만 앞세우는 요즈음 세태, 개발이란 미명하에 덤으로 묻혀지거나 왜곡되어 떠내려가는 소중한 유산들이 얼마인가.

반풍수노릇이야말로 내 고장 산천을 훼손하는 또 하나의 독소임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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