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왕성 유래는 거제시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역사이다. 폐왕성을 비롯해서 의종의 대비장이 있는 안치봉. 그 뒤에 있는 여관이(여갱이), 고려무덤 (고름등), 거림부락 옆 기성관 유적지등 은 이미 조사와 발굴을 하여 일부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고 알려지지 않고 조사를 하지 않은 곳들이 있다. 제석당과 토성, 공주샘, 폐왕성의 우물(天池)의 전설 등은 향토사에도 없다.
제석당은 농막부락 끝 마하터 마을 앞에 기성관 유적 발굴지 근처를 가리켜 예나 지금이나 연세 많은 분들이 부르고 있다. 제석당은 사당을 지어놓고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서 소원을 빌던 곳이다. 오랜 세월에 기성관도 제석당도 모두가 없어지고 그 이름들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토성(土城)은 폐왕성의 성벽바깥 서남쪽에 위치한다. 오륙십년 전에는 구 안에 논이 두어마지기 있어서 논농사를 지었다. 지금도 소나무 속을 찾아보면 그 토성과 논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토성도 함께 개발해야 될 줄 믿는다.
공주샘은 지금 방하부락 공지거리에 있는 우물인데 부락사람들이 공지샘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옛날부터 있었던 샘이다. 폐왕성 우물에 전해오는 전설에는 그 우물에다 명주실꾸리를 던져 넣으면 실꾸리가 갱이바다에서 뜬다는 내용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만큼 샘이 깊었다는 것이다.
수년전에 어느 대학 사학자들이 와서 보고 비가 오면 빗물을 모아서 용수로 사용하는 집수지 공사를 하면서 바닥에 물이 새지 않게 집수정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곳에 태어나서 70년 넘게 살아온 필자는 그것이 우물과 샘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집수를 하는 웅덩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것이 빗물을 저장하는 집수지라면 당시 성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식수는 성 근처 어느 곳에라도 우물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성 바깥 어디에도 우물이나 샘이 있었던 곳은 없다.
아무리 세월이 오래되었다 해도 약간이라도 흔적은 남아있어야 할 것이지만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또 성터가 산등성이를 타고 와서는 산등성이보다 수십m 높이 솟은 산봉우리에다 성벽을 축성을 하였음으로 우두봉에서 물을 끌어오더라도 중간에서 물을 도수로공사를 수백m나 되게 해야만 성안의 샘에다 집수를 시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흔적도 없고 어디서나 발견했다는 말도 없다.
폐왕성 탐사 사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물을 가두는 집수지라고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폐왕성의 우물은 필자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도 샘은 막혀서 얕은 웅덩이로 되어 있었지만 물은 항상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필자는 거제시에 지금 새로 만들어 놓은 집수정을 관계 전문학자들이 다시 면밀히 조사해 본래의 수맥을 찾아서 원래의 샘을 개발하고 원상복구가 될 수 있기를 건의하고 싶다.
최근 국가지정 사적지가 되면서 '둔덕기성'으로 되었는 줄 아는데...
언론사에서는 기고문을 실으실때...정확하게 정의 해야 할 줄 압니다...'
'신문'을 보는 일반인들은 '기사내용'을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