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만이 능사가 아니다
죽음만이 능사가 아니다
  • 거제신문
  • 승인 201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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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의 원고지로 보는 세상 < 171>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장군 이릉(李陵)은 군사 5천으로 그 열배가 넘는 흉노(匈奴) 싸웠으나 끝내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하고 만다.

그 이듬해 전쟁 중에 전사한 것으로 여겼던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제는 크게 노하여 이릉의 일족(一族)을 참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이릉의 사람됨을 익히 알고 있던 중신들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변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사마천(司馬遷)은 사가(史家)다운 냉철한 눈으로 사태를 통찰하고 이릉이 투항한 것은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일 것이니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한다. 이에 무제는 진노하여 사마천을 투옥하고 궁형(宮刑)에 처한다.

궁형이란 남자의 성기를 잘라 없애는 가장 수치스런 형벌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일컬어 '이릉의 화(李陵之禍)'라 부른다. 그 때의 착잡한 심경을 사마천은 이렇게 글로 적었다.

"내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까닭은 내 죽음이 한낱 아홉 마리의 소(牛) 중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다." '구우일모(九牛一毛)'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당시 사마천은 중국 최초의 역사 교과서로 불리는 '사기(史記)'를 집필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런 수모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문제 중의 하나가 생명경시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학생의 연이은 자살사건, 단독 자살로 결론난 문경의 십자가 시신사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은 소문이라도 나지만 신문의 귀퉁이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죽음까지 치면 우리나라 자살사망자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1위다. 오죽하면 초등학교에까지 '학생자살예방 관리계획'을 세우라는 지시가 내려지겠는가.

자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특히 자살이 미화되거나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죽어야할 이유가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살아야할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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