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이보다 더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자연 그대로…이보다 더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 박근철 기자
  • 승인 2011.0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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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포동 옥명마을

자연부락 모습 그대로 간직한 대우조선 배후도시 

원주민 ⅓ 차지…거주·생활하기 가장 편리한 곳

조각공원·산책로, 줄잇는 '주민 발길'...상가·아파트 입주, 신도시로 '탈바꿈'

 능포동은 거제도 최동단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포동이 거제에서 꽤 먼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능포로 드라이브나 나들이를 가려고 하는 경우가 적었다. 하지만 이젠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우회도로 임시 개통으로 고현에서도 15분 거리이고, 관광버스들이 줄을 잇는 장승포에서도 불과 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거가대교가 바라보이는 능포항이 능포의 외곽을 지키고 있고, 상춘객들이 즐겨 찾는 양지암 공원도 능포시내를 품어 안고 있다. 또한 망산 등지에는 등산로와 산책로가 곳곳에 갖추어져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능포다.

그 양지암 공원 바로 아래 마을이 옥명마을(통장 신태욱)이다. 옥명마을은 장승포동 신부마을, 능포마을, 옥수마을과 붙어 있다. 옥명마을은 조선시대에 옥명포(玉明浦)로 불리다가 1912년 옥명동, 1915년 능포리에 통합 법정되었다. 그러다가 1942년 능포와 옥명의 2구로 나뉘었다가 이후 능포동과 합쳐져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옥명마을은 360여 가구에 600∼7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가구수에 비해 인구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도시이면서 예전의 자연부락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보니 토착민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 100세대 가량이 마을 토착민이라고 하니 대우조선 배후도시의 모습과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토착민이 많다보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대우조선에 다니는 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이 상당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규모 텃밭을 가꾸는 가구도 꽤 된다.

옥명마을은 웃골(윗마을)과 솔목(지금의 11통)으로 크게 나뉜다. 웃골은 우물로 유명했다고 한다. 웃골에 있는 우물은 매일 아낙네들로 붐벼 빨래를 하며 담소를 나누던 장소였다. 이 곳의 우물은 수질이 너무 좋아 마을 주민들의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로 중요했다고 한다.

옥명마을은 '이슈'가 없는 마을이다. 다시 말해 큰 사건·사고 없이 거주와 생활하기에 가장 편리한 곳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도시의 모습을 띄면서도 주차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삶의 질이 높은 곳이다.

게다가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러다보니 자원봉사가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옥명마을 인근에는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가거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곳이 널려있다.

마을 바로 위에 위치한 양지암 조각공원과 장미공원은 해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가족 단위, 혹은 각종 모임 단위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또 장미공원에서 망산에 이르는 건강도로와 조각공원에서 양지암 등대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매일 '건강 워킹'을 하는 주민들로 붐빈다.

능포항이나 조각공원에서 바라보는 거가대교의 조망도 한 눈에 시원스레 들어오고, 마을 주변 녹지 공간도 잘 관리되고 있어 기분이 상쾌하고 눈이 즐겁다.

장미공원 아래 능포동 주민자치센터에 조성되어 있는 소규모 소나무 공원만 봐도 이런 좋은 환경을 잘 설명해준다.

때문에 주민들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에 산다는 자부심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옥명마을은 유명한 항일 운동가가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1892년에 태어나 1957년에 별세한 것으로 추정되는 옥영준씨가 바로 주인공.

옥씨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의병인 아버지를 따라 1906년 만주로 이주해 1919년 대한독립단 결성에 가담했다. 그러다 이듬해 체포돼 복역하다 출옥 후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거제로 돌아온 뒤엔 망명생활 중에 배운 중국 침술로 주변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에 전념했다고.

옥씨의 묘소는 부인 남순이씨와 함께 1985년 거제시에서 조성했으며, 국민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이처럼 많은 '변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옥명마을의 중심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의 예전 모습은 이제 찾을 수가 없게 됐다.

게다가 많은 상가와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신도시로의 모습으로 탈바꿈해 '옥명의 향수'를 찾는 사람들에겐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가슴 한켠에 아련히 뭉쳐지는 애틋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진설명1) 지난해 5월 조성된 옥명마을 벽화 거리. 100m 가량 주택가 담벽에 그려진 벽화는 1970년대의 옥명마을 모습은 물론, 각종 민속놀이 등을 표현해 친숙함을 더했다.

(사진설명2) 장미공원에서 바라본 옥명마을.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주택가가 형성되면서 예전의 많은 논·밭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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