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내소에서 만난 김옥필씨(여. 47)는 거제1기 문화관광해설사다. 11년 경력의 배테랑이며 함께 문화관광해설사 생활을 시작한 5명의 1기 해설사 중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병이기도 하다.
김옥필씨가 문화관광해설사가 된 것은 지난 2002년. 거제면 출신의 김옥필씨는 당시만 해도 마을 부녀회장, 의용여성소방대 활동 등 활발한 사회생활을 즐기는 '보통 주부'였다. 활달하고 사교성 좋은 김씨를 유심히 지켜본 마을 이장님의 우연한 추천이 김옥필씨가 문화관광해설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문화관광해설사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경남도 전체에서 33명밖에 없었던 문화관광해설사였고 그 중 한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문화관광해설사는 문화유적지 및 관광지에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해당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직업이다. 법적으로 자격증이 의무화되지 않아 직업적인 목적보다는 그 지역의 문화 및 관광자원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는 자원봉사활동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맞다.
현재 거제시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식비 및 교통비 등 실비보전개념으로 일일 4만원 내외의 활동비를 지급해 주고 있다. 높은 수입을 얻을 수는 없지만 출퇴근 시간이 고정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거제에는 교육생까지 포함해 15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활동 중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김옥필씨의 문화관광해설사 인생이 올해로 벌써 11년이다. 주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안내 및 해설을 맡고 있지만 요청이 들어오면 블루투어 버스를 타고 거제 곳곳의 유명 관광지를 안가는 곳이 없다.
11년 문화관광해설사 생활 속에 눈 감고도 거제 모든 곳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렇게 되기까지 잊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유난히 눈물이 많고 감정이 풍부한 김옥필씨는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안내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쏟아내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단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거제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요. 당시 포로 생활을 했던 어르신들이 관광객이 돼서 찾아오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현장에서 마주합니다. 회한에 젖은 그분들의 눈이 마주칠 때면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나오곤 했어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일화 중에서 김옥필씨는 지난 2004년 겪었던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노모와 함께 온 한 60대 남자가 안내를 해주던 김옥필씨에게 '술 한잔 따라놓을 곳이 없냐'고 정중하게 청했던 것.
의아한 마음에 연유를 묻는 김씨에게 남자는 "나는 뱃속에서 아버지를 여읜 유복자다. 얼마 전부터 꿈속에서 아버지가 나와 '육신은 갈가리 찢겼지만 혼은 거제포로수용소에 남아 떠돌고 있으니 와 술 한잔 따라달라'고 말씀을 하시더라. 그래서 술 한잔 따라 놓고 절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단다. 유난히 아픈 역사가 많은 거제의 문화관광해설사이기에 겪었던 독특한 경험이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현재 각지자체에서는 공개채용을 통해 문화관광해설사를 뽑고 있다. 5년이상 거제에 거주한 35세 이상 거제시민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으며외국어 가능자에 대해서는 우대 조항을 두고 있다. 올해의 경우 19명이 공개채용에 응시해 5명이 선발, 오는 7월12일부터 2주간의 소양교육을 받고 문화관관해설사로 활동하게 된다.
특별한 자격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옥필씨는 '좋은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기 위해선 한가지 소양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바로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거제면 출신의 김옥필씨는 어린 시절부터 거제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했다.
"거제의 모든 것이 좋았어요. 남들은 섬이라고 안 좋다고 말하지만 어딜 가도 거제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는 곳은 드물거든요. 저는 그런 거제를 너무나 사랑하고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어요. 그런 일이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직업인데 제가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김옥필씨는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집에 가서는 녹초가 되어 쓰러져도 일터에만 나오면 그렇게 신이 난다니 김씨의 말처럼 문화관광해설사는 김씨의 천직인 듯 보였다.
문화관광해설사로서 거제 문화유산관리의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 김씨는 '아주 많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거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대한 안내는 어느정도 되어 있지만 문화유적지에 대한 관리와 홍보가 부족한 점이라고 귀뜸했다. 그중에서도 둔덕기성, 거제 기성관 등 잘만 알리면 훌륭한 역사관광 명소가 될 수 있는 곳들이 묻혀가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움이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옥필씨에게 '거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볼만한 추천지'를 묻자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고 주저함도 없이 '망산이요'라고 대답했다. 망산의 수려한 경관은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명산이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거제의 문화유산을 홍보하는 중요한 첨병인 문화관광해설사. 그 중심에 김옥필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