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의 삶을 솔직담백하게 담으면서 한국적 미를 가장 잘 나타내었다는 조선후기 풍속화는 단원(壇園)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이 쌍벽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단원과 혜원의 일대기를 픽션화했는데 혜원을 여자로,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면서 연인으로 설정한 것은 모두 허구다. 기록에는 두 사람이 교류했다는 흔적이 없다. 다만 동시대에 활동한 것만은 사실이다.
혜원은 훌륭한 그림을 많이 그려 한국 미술사에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남녀의 은밀한 사랑놀음이나, 여인들의 관능적인 에로틱한 장면 곧,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는 노골적인 춘화(春畵)도 여러 작품 남아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며 명망 높은 사대부가의 자제가 추월색이라는 이름으로 음란소설을 발표한다는 영화 '음란서생(淫亂書生)'의 모티브가 혜원일지도 모른다.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에 '월하정인'이라는 그림이 있다. 깊은 밤에 두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그렸는데 다른 그림에 비하면 대단히 점잖은 그림에 속한다.
벽이 허물어진 낡은 담장, 요염한 달, 나무와 담장을 감싸는 밤안개, 밤은 깊어 삼경인데 호롱불을 든 남자와 쓰개치마를 쓴 여인이 은밀하게 만나고 있다. 한량은 어딘가로 가자고 하고, 여인은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신발은 한량을 향하고 있다.
담장에는 낙서처럼 '월침침야삼경 양인심사 양인지(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 달빛이 가뭇가뭇한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라는 화제가 그들의 속내를 대신해 준다.
그런데 이 그림의 시점이 그림 속에 나타난 달이 초승달이 아니라 부분월식이라는 단서로 1783년 8월 21일 11시 50분께라는 주장이 나왔다.
약 2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림의 배경이 되는 시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