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즈음에
쉰 즈음에
  • 거제신문
  • 승인 200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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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진 칼럼위원/변호사

중학시절의 추억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봄 소풍을 앞두고 반장인 나를 담임선생이 불러 갔더니, HR시간에 소풍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라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수없이 소풍을 갔지만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다.

담임선생은 ‘내가 마산에서 부임해 왔는데 도회지에서는 소풍 때가 되면 담임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거제는 시골이라서 그런지 아무 계획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에게 돈을 거두어 그 경비를 마련하고, 선생인 나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지를 의논하라’고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차서 말문이 막혔다. 뭐 이런 자가 선생이라니! 반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담임선생을 성토하였고, 그 결과 선생의 의도는 묵살되었다.

그 며칠 후 소풍날, 어머니가 담배 한 보루를 신문지에 싸 주면서(당시 우리 집은 담배 가게를 하고 있었다)담임에게 갖다 주라고 하여 들고 갔는데, 담임이 먼저 소풍선물을 요구하는 기색이 보여 도로 집으로 가지고 온 적이 있다.

그 일들로 반장인 나는 담임에게 찍혀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담임선생은 교육자로서 부적격자이고, 당시 어린 나이에 한 나의 결정은 옳았다.

늙은이의 10가지 슬픔

실학자 이익은 그의 명저 『성호사설』에서 사람이 늙어지면서 겪는 슬픔에 관하여 설파한 바 있다.

그 내용은 ①30년 전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②3일전의 일은 기억이 안 난다.  ③낮에 앉아 있으면 꾸벅꾸벅 졸리고, ④밤에 누워 있으면 정신이 맑아지면서 잠이 오지 않는다. ⑤이빨이 듬성듬성 해져 고기를 씹으면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은 적고, ⑥이빨사이에 끼이는 것이 더 많다. ⑦울 때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고, ⑧웃을 때 눈물이 난다. ⑨흰 얼굴은 검어지고, ⑩검은 머리는 하얘진다는 것이다.

공자님이 불혹(不惑)이라고 했던 40을 훨씬 넘어 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50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에게, 위 말이 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나도 벌써 중늙은이의 반열에 들었구나.’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겐 늙어 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그보다 더한 슬픔이 있다.  그것은 ‘내가 과연 나이 값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내가 중학시절 하늘같은 담임선생에게 대들었던 그 작지만 소중한 기백과 용기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가?

그 나이보다 세배를 더 먹은 현재 나는 그때보다 도덕적으로 정의롭고, 인격적으로 성숙하였는가? 결코 그런 것 같지 않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꾀는 늘고 요령은 생겨 다소 영리해져 노회(老獪)해졌을지 모르나, 그것은 지혜도 현명함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 대한 반성적 고찰

나는 주로 만나는 또래의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의 장점 보다는 단점에 주목하는 나 자신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완고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그 잘못의 정당한 지적에 대하여 화를 낸다.

겉으론 원칙과 명분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실리를 챙긴다.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 대하여 쉽게 악평을 한다.

여기서는 이 말을 하고, 돌아서서는 저 말을 한다. 민법에 ‘만 20세로 성년이 된다.’고 규정(민법 제4조)하고 있으므로, 쉰 살 남짓 되는 사람들은 성인이 된지 벌써 30여년이 되었다.

‘성인용품’이라는 말이 있고, ‘성인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들에 사용되는 성인(成人)이라는 용어는 결코 ‘사람이 된다.’는 의미에 부합하는 ‘성인(成人)의 완숙함과 인간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저급한 동물적 본능’을 가리킨다.

마치 정치(政治)라는 말이 ‘바르게 다스린다.’는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서도 정직한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다.’라는 말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각 개인은 타인 속에 자기를 비추는 거울을 갖고 있고, 그래서 나 또한 위와 같은 단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정직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

나는 듣고 보아서 안다. 우리의 삶이란 결코 영원하지도 않고, 산 자는 잠시 휴가를 즐기는 죽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노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솔로몬의 설파는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또한 나는 느낀다.

무상한 인생에서 야망이 누구에게나 주는 유일한 보상은 약간의 권력, 약간의 일시적 명성, 휴식처인 무덤, 그리고 곧 사라질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겪어 보아서 안다.

우리 주변의 정치인들은 정치적 야망 때문에 워낙 거짓말을 잘해서 자기가 하는 말조차도 믿지 않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을 때 오히려 놀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너무 잘나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멍청한 인간들로부터 지배당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플라톤의 말은 거짓말쟁이들의 향연장인 우리정치판에서는 ‘너무 정직해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부정직한 인간들로부터 지배당하는 대가를 치른다.’로 바꾸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나는 정직한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정직이 최선이라고 진심으로 말하려면 먼저 세상을 정직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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