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조선해양업계의 화두는 드릴쉽(Drillship)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드릴쉽의 최강자인 삼성중공업을 필두로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이 전 세계에서 발주된 드릴쉽의 100%를 수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시추 설비에 사용되는 기자재의 국산화율이 터무니없이 낮아 실질적인 이득의 많은 부분이 외국계 회사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글에서는 드릴쉽 및 드릴링 리그의 전체 가격 중 30~38%를 차지하는 드릴링 장비에 대해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국내에서 건조되는 시추설비는 크게 드릴쉽(Drillship)과 드릴링 리그(Semi-submersible Rig) 두 가지 종류이다.
우리가 조선소 주위를 오가며 흔히 볼 수 있는, 선박의 가운데에 높은 탑처럼 보이는 것이 설치된 배가 드릴쉽이고, 사각형 형태로 역시 가운데 동일한 탑처럼 보이는 것이 설치된 설비가 반 잠수식 드릴링 리그이다. 이번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그 탑처럼 생긴 부분, 즉 시추탑 또는 데릭(Derrick)이라 불리는 것이 포함된 드릴링 장비이다.
이 시추탑은 해저로 들어가는 파이프를 세우고, 그 파이프에 수직 압력과 회전력을 발생시켜 굴착이 이루어지게 하는 장비이다.
이러한 시추탑을 필두로 파이프를 쌓아놓는 공간, 파이프를 들어 올리는 크레인과 파이프를 이동시키는 장비들, 그리고 파이프에 회전력을 발생시키는 장치, 수직 압력을 해소시켜주는 설비, 해저에 설치되는 장비와 파이프를 통과시키는 문풀(Moon-pool)이라 불리는 통로와 그 문풀까지 장비들을 이동시키는 캐리어(Carrier), 원활한 굴착을 위해서 그리고 굴착되는 파편들의 회수를 위해서 투입하는 일명 머드(Mud)라고 불리는 이수 순환 시스템 등이 설치된다.
대부분의 장비들은 유체의 강한 압력을 이용하여 동력을 발생시키는 유압 장비들이다. 이러한 장비들을 운용하는 메커니즘은 해저 시추경력이 100년 이상 된 노르웨이나 영국 등 북해유전 국가들이나, 일찍이 멕시코만을 개발해왔던 미국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추 장비를 운용해본 적이 없는 우리가 단시일 내에 그들의 기술을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되는 장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 세계적으로 산업용 기계산업이 발전한 한국이란 나라가 못할 것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적 시스템을 아우르는 메커니즘은 현재 이러한 장비를 독식하고 있는 NOV나 AKMH 같은 회사가 담당하더라도 그 시스템 안에 사용되는 크레인이나, 동력구동장치, 이동장치 등은 충분히 국산화 할 여력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국산화되면 우리가 제작하는 설비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또 많은 중소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역으로 우리의 장비를 외국계 기업에 납품함으로써 수출의 기회까지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형강을 이용하여 단순 조립되는 시추 탑 그 자체도 중국에서 절단, 가공, 조립과정을 거쳐서 제작된 패키지를 거제 인근의 야드에서 재조립하는 정도의 공정만을 우리가 하고 있는 실정이다. NOV와AKMH 같은 회사가 전체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을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시키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들로 하여금 제작공장을 이곳 거제로 옮겨오도록 설득하고 압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