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7년 전(2000년). 남편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 앞에 ‘고난’이 찾아왔다.
그녀와 함께 남은 두 딸 김원영(21), 혜영(18)이는 그녀가 살아야 하는 이유였고, 세상의 전부였다.
집에서 살림만 하다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기술과 경력이 필요없는 식당일과 청소를 시작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 둬야 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싫어 바깥출입도 하지 않았다. 하루 하루를 눈물로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녀에겐 두 딸이 있었다. 그녀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고향 남해를 떠나 조선소에 취직하기로 마음먹고 2002년 거제도로 왔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막연한 기대로 거제도에 온 그녀가 조선소에 취직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현읍사무소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그녀는 새 삶을 살게 된다.
거제자활후견기관에 가서 일자리를 상담해 보라는 전화였다. 그녀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됐고, 자활후견기관에서 간병인 일을 시작하게 됐다.
먹고살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간병을 하던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보다 더 어렵게 지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희망을 갖게 됐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됐다.
이때부터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서 나눠 받은 희망을 또 다른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돌려주기 위해 열심히 간병사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활사업을 한 후 큰 딸 원영이의 후원자가 생기고, 작지만 내 집도 마련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그녀. 그녀는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자립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자립하면 그 자리를 다른 어려운 이웃이 채우게 될 것이고, 이 이웃이 다시 자립하고 나면 또 다른 이웃이 그 자리를 채우고 하는 과정이 되풀이되다보면 더 많은 어려운 이웃들이 자활후견기관 사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빨리 자립하기 위해 올 3월부터 시작되는 장애우통합교육보조원 사업에 지원했다는 그녀.
장애우통합교육보조원 사업은 일반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장애우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으로 현재 7명이 교육중이다.
“거제에 온 후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큰 사랑을 받으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그녀는 “거제에서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거제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밝은 미소와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동행은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어렵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