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가량 물속서 작업, 겨울철 추위·통증 무작정 참아내…절대 권하고 싶지는 않아"

△ 물길따라 오다 보니 그렇게 됐지 뭐(웃음). 제주도에서도 물질을 했다. 그러나 뭍으로 나오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거제도로 왔다. 23살 때 거제도로 홀로 건너와서 능포에 정착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 당시에는 제주 해녀들이 전국 갯가로 '원정물질'을 많이 다녔다. 어디서든 먹고 살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배가 없어서 물질해서 잡은 물건을 망사리에 넣고 강을 거슬러 산을 넘어 능포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복이며, 성게가 바다 밑에 지천이어서 일하는 재미는 있었다.
- 해녀는 어떻게 일하나.
△ 썰물 때 바다에 나가기 때문에 물때에 맞춰서 일을 시작한다. 바다에 나가 망사리를 띄어 놓고 호맹이를 들고 자맥질을 한다. 한 번 일하러 나가면 5시간 정도 물속에 있는데 장비로 산소를 공급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십 번을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한다. 망사리에 물건을 채워 뭍으로 돌아와도 지친 몸으로 성게를 손질하는 등 후반 작업을 하는데 그것도 4~5시간 걸린다.
- 엄마로서의 역할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요즘에는 임신했다하면 금덩이 모시듯 하더라만 우리 때야 그런게 어딨나. 배불렀어도 애 낳기 전날까지 물질을 했다. 출산 후에도 서너날 쉬고 차디찬 바닷물에 들어가곤 했다. 젖먹이도 물질하러 나간 낮에는 미음이나 누른밥 끓인 물을 먹이고 밤에만 젖을 물리곤 했다.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 해녀들은 종합병원이다. 통증 때문에 일하기 전에 진통제를 2~3알 먹고 입수하는 해녀도 있다. 아무래도 겨울에 바다 속에 들어가는 게 가장 힘들다. 물이 얼마나 찬지 살을 에는 추위는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맨손으로 물속에 들어갔다 무감각해질 정도로 꽁꽁 언 손을 녹이려 뭍으러 나와 소나무가지 피운 불을 잠시 쬐고 다시 입수하기를 반복한다.
- 해녀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는가.
△ 우리는 능포 앞바다 속을 훤히 들여다본다. 같은 곳에서 40년을 일했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바다 속도 육지처럼 다 다르게 생겼고 특징이 있다. 가파른 곳이 있는가 하면 굴이 있는 곳도 있고 평평한 곳도 있다. 세삼바우, 큰대, 작은대, 살구지, 느른개, 작은개 등 이름을 붙여 "오늘은 세삼바우에 가니 전복이 많더라" 등의 대화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 지금도 물질을 하고 싶은지.
△ 그렇다. 배 타는 것도 위험하고 나이도 있으니 물질을 그만하라고 주변에서 말려서 3년 전부터 물속에 들어가지 않지만 지금도 마음 같아선 바다에 들어가 고동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안하고 있으니 오히려 더 아픈 것 같다. 그래도 바다가 그리워 이렇게 다른 해녀가 따 온 고동을 고르고 홍합을 까는 소일거리를 놓지 않는다.
- 바람이 있다면.
△ 너무나 힘들어서 누가 물질을 한다고 하면 내가 말릴 것이다. 그것을 안 해도 편안히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지 않나. 그러나 해녀 일을 새로 배우는 사람이 없어 우리가 잊혀 질 것이므로 그런 점이 서운하다. 보잘 것 없는 일이지만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가르친 일이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해녀들은 바다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맨몸으로 망사리 하나 메고 하는 일에 어떻게 욕심을 부리겠나. 그러나 요즘에는 좋은 장비를 이용해 바다 속에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들어가 있으면서 작업을 하고 50m정도의 깊이까지 들어가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낙동강 하구언 방류도 문제다.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밀려오니 전복씨도 함께 쓸려 내려가 버린다. 올해도 해녀들이 바다에 전복씨를 심어놨는데 샛물이 들어오니 전복이 죽어버렸다.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