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4월은 또 찾아오는 총선이다.
총선 때마다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우리 지역과 나라에 적합한 국회의원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늘 있었지만 누가 그에 합당한 사람인지가 언제나 문제였으며 당선된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먼저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법령에 대한 평균 정도의 지식과 남들 보다 조금 더 나은 성실함과 엄격한 도덕성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미래에 대한 창조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이면 훌륭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법령에 대한 평균 정도의 지식은 법률전문가의 수순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법의 체계와 법의 입법 취지에 대한 건전한 일반인의 해석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즉 비법률전문가인 보통인의 입장에서 법을 이해하는 정도면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입법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정도의 수순에도 미치지 못하는 후보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후보자가 이 요건을 쉽게 통과하는 것 같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성실함은 자신의 주변인들로부터 ‘이 사람은 성실하다. 최소한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되는 정도를 의미한다. 대체로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사람이면 게으름의 피우는 사람은 일단 아닌 것으로 봐도 무방한데 후보자의 경력을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사람인지 정체불명의 직업과 경력으로 인공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위장한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요건으로 상당한 후보자가 탈락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의 요건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엄격한 도덕성은 후보자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자신이 엄격한 도덕성을 갖추었는지 아닌지는 외부의 판단보다는 자기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비추어 판단되는 요건이다. 위장된 외식적인 도덕성 또는 비도덕적인 사람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엄격한 도덕성이라 할 수 없다.
아주 작은 예를 들면 늦은 밤 또는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지키는 것은 엄격한 도덕성을 갖춘 것이며 효율성 내지 교통의 흐름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쉽게 신호등을 어기는 것은 비난 받을 만큼의 저급한 도덕성이라 할 수 없지만 분명 엄격한 도덕성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엄격한 도덕성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 개념으로 마치 시험의 커트라인을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으로 정하는 것과 같으며 그 판단은 후보자 각자가 가장 진솔하게 하여 기준미달자는 스스로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강행하는 후보자가 많아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의아하게 하며 소위 선거판의 물을 흐리고 있다. 필자도 이 부분에서 가장 자신이 없어 선거권자로 만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렵고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 갖출 수 있는 창조적 비전은 미래를 보는 직감이나 영감으로 결코 환상적인 망상이 아니며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강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자신만의 포부내지 정책을 내세우는데 정책의 내용을 보고 판단하는 것보다 정책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가 얼마나 우리의 미래를 아름답게 할지를 판단하면 된다. 즉 현상유지적인 정책인지 건전한 현상변경적 정책을 내세우는지를 보면 일응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고려대 강성학 교수의 표현처럼 ‘진정한 지도자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 야심에 찬 인간이며 그의 야심은 자신의 지성적 비전과 실천적 용기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러한 지성이나 용기란 돈으로 언제나 살 수 있는 기성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지도력은 과학적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어느 목수도 플라톤을 읽고 탁자를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국회의원은 철학적 지성과 장인적 기술을 갖춘 도덕적 정치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