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물씬’ 거제5일장
사람 냄새 ‘물씬’ 거제5일장
  • 백승태 기자
  • 승인 2007.02.14
  • 호수 1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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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할인매장에 없는 ‘정 & 덤’ 가득

“있어야 할 것 다있고 없을 건 없답니다.”

제 5일장에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에는 없는 덤이 있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이 넘쳐난다.

매월 4와 9자가 들어간 날, 거제면 복개천을 중심으로 5일마다 민속 5일장이 열린다.  새벽 5시30분 어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6시에 이르자 어슴푸레한 여명이 밝아오면서 난전이 하나둘씩 들어선다.

설을 앞두고 열린 거제면 5일장에는 9일 많은 인파가 몰려 제수용품과 선물을 장만했다.
없는 것 빼놓고는 다 있다는 거제 장날 초입에는 과일장사에서부터 뻥튀기, 양말장사 생선장사에 이르기까지 수백여종의 좌판이 이어져 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질서를 잡아가며 장이 펼쳐진다. 큰 소리로 흥정을 하지만 이것도 정을 나누는 과정일 뿐 절대 싸움은 아니다. 명절 분위기를 반영하듯 뻥튀기 아저씨의 ‘뻥이요’하는 외침에도 힘이 실려 있다.

인근 식당 아주머니도 평소에는 휑하다가 장이 서는 날이면 새벽부터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좋다며 연방 싱글벙글이다.

집에서 키웠다는 마늘이며 시금치 등 푸성귀의 싱그런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았다는 도다리 등 싱싱한 생선이 팔딱거린다.

분위기는 8시에 이르자 절정을 맞는다. 거제 둔덕 동부 남부 사등 고현 등 각 지역에서 첫차를 타고 나온 촌부들의 발걸음이 늘었다.

옷가게 앞을 지나던 70대 할아버지가 맞은 편에서 오던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나면서 시골 5일장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미 막걸리 몇 잔을 걸쳤는지 불그레한 낯빛의 두 분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듯 누구라 할 것 없이 욕 아닌 욕을 쏟아낸다.

“야 이 문디자슥아, 아즉 안 죽고 살아 있었나.”
“이 쌔가 만 발이 빠져 디질 놈아, 니 두고 와 내가 몬저 죽을 끼고.”
“조게 조디가 팔팔한 거 본께네 아즉 한 이십 년은 더 살 것다.”
“그래 내사 배르빡에 똥칠할 때까정 살 끼다.”

말투만 들으면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 같으나 실상은 더 없이 다정한 친구 사이였다. 욕으로 우정을 나누고 농담으로 친밀함을 더해갔다.

가축시장에는 제법 살이 통통히 오른 고양이며 토끼가 불안한 듯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고집 센 염소는 뒹굴다시피 끌려오면서 주인과의 이별이 아쉬운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소는 다른 주인을 찾아 떠나고 애지중지 키운 염소를 판 60대 아저씨(?)는 그 돈으로 다시 어물전에 들렀다. 신선한 파래냄새와 비릿한 생선냄새가 단팥죽 냄새와 어우러져 정겨운 갯내음을 풍긴다. 과일 파는 트럭에선 구수한 트로트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고 식당에선 국밥 냄새가 입맛을 당긴다.

한바탕 장꾼들과 흥정을 마친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피는 단팥죽을 아침 삼아 허기를 채운다. 채 몇 숟갈 뜨자마자 손님이 들이닥쳐 입씨름이 이어진다.

죽림에서 생선을 팔러 온 할머니(57)는 아직 아가씨라고 우기며 사진을 예쁘게 찍어달라며 머리까지 매만진다. 설날 손자에게 줄 새배돈 마련을 위해 새벽부터 생선대야를 이고 왔다며 손자 자랑을 늘어놓는다.

어느새 할머니의 대야에 넘쳐나던 생선도 바닥을 드러냈다. 오전 10시가 되자 북적이던 장꾼들도 두손 가득 장바구니를 채워 하나둘씩 떠나고 상인들도 다음 장날을 기약하며 좌판을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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