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금(賻儀金)
부의금(賻儀金)
  • 거제신문
  • 승인 2011.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후기 문신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은 형제 정승(政丞)에 형제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하다. 그의 부인이 죽자 많은 부의금이 들어왔다. '정승 죽으면 안가도 정승집 개가 죽으면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짐작이 간다.

장례 후 집사가 와서 큰상주께서 남은 돈으로 땅을 사고 싶어 한다고 전하자 정승은 당장 아들을 불러 '네 어미를 팔아 땅을 사려하다니'하며 회초리로 다 큰 아들의 종아리를 치고는, 다음날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입구에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렸다. 이는 선생이 '내가 죽거든 가난한 후배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달마의 선종(禪宗)을 중국에 정착시킨 6조 혜능께서는 열반을 앞두고 '내가 입적한 후에 울지도 말고, 조문이나 공양물도 받지 말라'는 장례지침이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남아 있다. 요즘 스님들의 불장(佛葬)이 행사 위주로 변질되고 있지나 않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부의(賻儀)란 상사(喪事)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되도록 보내는 물건이나 돈을 말한다. 예기(禮記)에 '예는 오고 가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禮尙往來)'고 하여 큰일이 있을 때 예물을 주고받는 것은 오랜 관습이며 아름다운 미덕이다. 그러나 부의금 문제로 형제끼리 싸우는 일도 잦다.

오죽하면 법원이 '부의금으로 장례비용을 치르고 남을 경우 피교부자 별로 접수된 금액의 비율대로 분배하고, 만일 그렇지 않거든 지위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분배하라'는 판결까지 해야 하는지 서글프다.

장례식에 줄지어 선 조화의 양이 자신의 인격인양 허세를 부리는 세상인데, 며칠 전 권민호 거제시장의 장모상에는  그 흔한 조화는커녕 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다산은 목민심서 제12장 해관육조에 '수령은 백성들로부터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를 실천한 목민관이라 참으로 자랑스럽다.

다산도 이를 보았다면 크게 칭찬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