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나이
노인의 나이
  • 거제신문
  • 승인 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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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 회장

▲ 김한석 시조시인
흔히 어릴 때 나이를 좋게 기억하고 있다.

기쁘고 신나는 일을 기억하여 슬픈 일도 함께 애틋한 추억이 되어 세월의 저편에 잘 익어 있다. 풋열매라 찡그릴 것도 없고 모두 잘 익은 과실처럼 보이는 것이다. 굳이 모를 세운 악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조차도 누적과 발효로 아름답게 변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살려고 하면 생명을 늦추기도 하고 나이를 연장하게 된다. 인간으로서는 자연수명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지만 노인수명이 옛날에 비해서 월등히 연장된 것은 사실이다.

발달된 의술과 획기적인 약발로 여기에 노인 스스로의 물리적(운동) 정신적(품성) 노력을 가하면 평균수명 70이 무색하게 된지도 오래다. 이제는 고희(古稀)의 희기한 연세를 넘어 희수(77세), 미수(88세), 그리고 백수(99세)까지도 노익장으로 지나게 되는 건강이 흔하다.

평상인의 생명수명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산다고 해서 능사가 아닐 것이다. 결코 과도한 노인복지나 사회빈곤 현상에 빗대어 하는 말은 아니다.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할 입지에 매몰되어 안타깝게도 생명의 존엄을 다 누리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이런 일이 인간생활의 총체적 삶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갈수록 편안해진다고 할까, 당당해지는 해법은 무엇일까? 젊음은 젊기 때문에 세상 일에 충실해야 하고 소위 노인 나이 65세 이상이 되어도 밀쳐오는 삶의 난관을 극복하는데 젊음 이상의 고뇌가 따르기 마련이다.

삶의 뜻을 세워 유혹을 이겨내어 겨우 할 일을 자각하는데 서른, 마흔, 쉰 살을 넘겨야 하는 긴 인내가 필요하지 않느냐? 인간나이 예순에 들어 겨우 남의 말도 귀담아 듣는다니, 삶이 평강 하려면 어떻게 나이를 먹는 것일까?

다행히 칠순까지 당당히 걸어온 자에게는 이 나이에서부터 시작하는 일도 대외적으로는 말할 것 없고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게 된다고 했으니 저 불유구(不踰矩)의 경지에 드는 나이는 노령화에 있어 크나큰 위안이다.

흔히 노인은 아이가 된다고 한다. 동안(童顔), 동심(童心)의 빛나는 자족감이 아니라 노인의 체신을 지키지 않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잘 삐끼고 성 잘 내고, 창구 같은 데서도 조금만 불친절하면 막무가내로 언성을 높일 때가 흔하다. 

속담에 봄비 잦은 것, 돌담 배부른 것, 늙은이 부랑한 것, 노인 성 잘 내는 것 등은 정말 품위 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고쳐나가는데 인생 70년이란 긴 세월을 소비하기도 한다.

겨우 인품의 구실을 할 수 있고 또한 이러는데 과히 두려울 것도 지나칠 것도 없이 마음 먹은 대로 척척 해낼 수 있는 실로 자유로워지는 노인의 나이는 언제인가? 노인이 되어도 끝없이 수행의 공을 쌓아야 함이 진정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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