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에필로그(epilogue)
2월의 에필로그(epilogue)
  • 거제신문
  • 승인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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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욱 전 거제상공회의소 사무국장

나는 천학(淺學), 박재(薄才)하면서도 97년 2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지역신문에 80회의 칼럼, 투고, 수상(隨想), 제언 등을 기고한 바 있으나 1년 반이 넘도록 글쓰기를 그만 두었는데 거제신문이 칼럼위원으로 다시 위촉해 주어서 부담은 되지만 독자들 곁에 가까이 갈 수 있어 매우 영광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에게 2월은 각별한 사연이 많다. 58년 2월21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말자 2월28일 부산 서면역에서 야간 특별 열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던 일, 63년 2월20일 지방행기보로 임명받아 고향 면사무소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일, 66년 2월15일 거제군에 전입와서 42년째 살고 있는 일, 딸 셋만 낳아 키우던 중 79년 2월22일 10년 터울의 아들이 태어난 일, 96년 2월14일 거제상공회의소 설립으로 사무국장을 맡아 10년간 재임한 일, 2007년 2월1일 거제시 생활폐기물 수거 대행업체인 태성기업(주)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일, 사무국장 퇴임 후 10개월이 지난 2월에 거제상의 법인 의원이 된 일 등 여덟 가지 사연을 반추(反芻)해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2년 전 햇병아리 9급 서기보가 거제군 전입을 자원(自願)하는 서신을 군수님께 보냈더니 내무과장께서 “김 주사, 우리 거제는 낙도(落島)인지라 공무원들이 떠나갈 궁리만 하는데 자원해서 오겠다니 크게 환영합니다”라는 승낙의 답장 덕분(?)에 강산이 네 번 바뀌도록 한 둥지에서 자랑스러운 거제인으로 숙명적인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96년 2월14일 우여곡절을 거쳐 거제상공회의소가 창립되어 사무국장직을 맡아 종합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의 기능강화와 위상정립,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와 상공회관 건립 등 기경사해(起畊四海:밭을 일구듯 널리 펼쳐 나가다)의 비전을 가지고 혼신의 열정을 쏟은 10년 세월을 잊을 수가 없다.

10년간 재임한 상공회의소 사무국장직을 그만둔 후 10개월을 실업자 신세로 지내던 나에게 태성기업(주)측으로부터 회사의 경영책임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1주일 동안 망설이며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지난 43년간의 공직자, 관리자로써 오로지 사무처리 경험 밖에 없는 사람이 기업의 경영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욕심이며,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회지도층 인사 열한분께 조언을 청하였던 바 나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을 잘 알고 계시는 여러분들께서 “사회 일각의 여론에 구애받지 말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를 도우는데 생애 마지막 뜻있는 기회이니 주저할 것 없이 요청을 받아들여 그 동안 쌓아온 경륜을 소신껏 발휘해 보라”는 권유에 결심을 굳혀 2월1일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정도기업육성(正道企業育成) ○투명경영확행(透明經營確行) ○노사화합정착(勞使和合定着) ○사원복지향상(社員福祉向上) ○지역봉사실천(地域奉仕實踐)의 다섯가지 운영방침을 세우고 동종업계의 선도기업인 태성기업(주)의 전통을 보전(保全)하며 시민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자세로 뼈를 깎는 노력을 경주할 것을 마음 속 깊이 다짐하였다.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법인 상공의원이 되었기에 10년 동안 정열을 바친 인과응보(因果應報)라 여겨 거제상공회의소의 정체성(正體性) 즉 설립목적 구현을 위하여 처음처럼 협력해 나갈 것을 표명하며 넋두리 같은 2월의 에필로그(epilogue)를 끝맺음하면서 독자님들의 따뜻한 성원과 충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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