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익숙한 호칭을 '여러 분'들로부터 듣고 살아 왔으니 나도 꽤 오랜 세월을 산 셈이다.
'그 분'이 '여러 분'도 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해 보지 않았던 시절에 사춘기를 보내고, '그 분'을 입에 잘못 올렸다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에 몸을 한껏 움츠리며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되기 위해 헛꿈을 꾸고 , 어느새 어렴풋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부턴 '그 분'들을 안주 삼아 농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한결같이 '친애하는~'이란 말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말씀들을 건넨다. 그때마다 마치 큰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는 듯한 이 무거운 느낌은 왜일까?
왜 우리는 나라의 제일 높은 사람을 '나랏님'이라고 여기며 그들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말 건네기를 예사로 생각하며 살아 온 것일까?
우리나라 헌법에는 분명히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분명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모든 국가 권력의 기반이 되고 국가존재의 이유가 되는 주체인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친애하는~'이라는 말 따위로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닐진대, '내가 하는 일들이 결국 나라를 위하는 옳은 일이니 너희는 잠자코 따라 오라'며 순식간에 일을 처리해 버리고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다.
그 환한 웃음이 우리 국민들로부터 받는 기립박수 때문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는가?
살면서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는 몇 가지 기억 가운데 등소평과 레이건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시다시피 등소평은 150cm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단척이고 레이건은 헐리우드 배우 출신답게 키가 훤칠하게 컸다. 레이건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레이건이 악수를 청하자 등소평은 일부러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 손을 잡으려면 레이건은 허리를 굽힐 수 밖에 없었다.
1984년이었으니, 중국이란 나라는 그 위상이 세계 최강의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꾀 많은 노인네는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자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장면을 12억 국민들에게 보여줘서 중국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통치자라면 기꺼이 그를 위해 머리를 낮추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열망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되 공경함이 없다면 짐승을 대하는 것과 같다." 맹자님의 말씀이다. 부모를 사랑하되 공경함이 없고 자식을 사랑하되 배려가 없다면, 그 사랑이나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에게 베푸는 사랑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한미 FTA 비준안 통과 후 1%의 친애하는 국민을 위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리던 당신, 한미 FTA로 직격탄을 맞은 농민들에게 아무 대책도 없이 경쟁력을 갖추는 기회로 삼으라는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부디 그 말씀만은 말아주십사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