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代)를 이어 가려는 사람들
대(代)를 이어 가려는 사람들
  • 거제신문
  • 승인 2011.1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아석 칼럼위원

지금 북한은 상중(喪中)이다. 대(代)를 이어 한반도의 절반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자가 생을 마감하고 또 다른 후계구도를 위한 길들이기가 문상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북한을 지구촌에서 가장 낙후되고 폐쇄된 사회라고 여기는 까닭은 단지 상대적인 가난이나 선군체제라는 모순보다는 왕조시절의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체제에 기인한다.

그러나 남쪽의 일부 사람들은 그런 정치체제의 모순이나 인권따위는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그저 남쪽 정부나 미국이 싫다는 반감만으로도 친북의 입지를 고수하거나, 이념대립을 무슨 지식계층이라고 여기는 듯 구태에 젖어있다.

심지어는 대기업, 혹은 대물림의 구도를 가진 재벌을 혐오하거나 질타하면서도 정작 정치구도에 나타나는 세습에는 함께 묻혀 들어가는 종속근성을 보인다.

자칭 중도보수라고 일컫는 기득권층에서도 이런 현상은 한결같다.

무슨 정치쇄신을 하겠다고 법석을 떠는 바람에 지켜봤더니 고작 하는 것이 마치 숨겨 놓았다는 듯 모셔 온 대선후보를 전면에 내세우고, 세습의 향수를 뿌려댄다.

그 후보의 선친의 영향력이나 향수에 젖은 기득권층을 향한 또 다른 발상의 대물림 짓거리다. 대물림의 당사자들은 우선 상대의 세습부터 인정하는 모양이다.

이런 현상들은 굳이 정치체계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부조리로 등장한지 오래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차지하면 그 정당성에 아랑곳없이 주변에는 부와 권력에 빌어 붙고 기생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약자들이 지닌 종속근성, 비열한 자들의 생존발상이 낳는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끔 북쪽을 향해 문상을 주장하거나, 그런 문상을 나무라는 갈등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는 분단국의 처지를 보게 한다.

대저 주체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근본부터가 틀려먹고 비굴한 자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 채 떠들어대고 있다.

정치를 하겠다고 선거 때 온갖 재산과 표정을 다 동원해서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고작 특정인의 대물림에 줄이나 서서 허깨비 춤을 추고 있는 걸 보면, 차마 북쪽의 전근대적 세습구도를 나무랄 형편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대(代)를 잇는다는 가족체계의 근본은 공동체 구성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약육강식의 우열에 스스로를 맡기자는 종속근성의 가치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대(代)물림을 한다는 뜻은 자연의 생멸(生滅)을 존중하는 생명사상의 질서요 근본이지, 주체를 잃은 채 평등과 자유의 진실마저 외면하고 특정인의 대물림에 따라 가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대(代)를 잇는다는 뜻은 역사의 진실과 순리를 찾는 삶의 생리지만, 이를 정치적 생리로 삼을 땐 스스로의 자존과 가치를 부정하는 함정이 된다는 걱정에서 드리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