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가 생각해보니 당나귀는 이미 늙었고 우물에서 애써 끄집어 올려봤자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침 우물도 말라버려 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당나귀와 함께 우물을 메우기로 했다.
주인은 삽을 가져와 흙을 파 우물을 메워나갔다. 당나귀는 주인이 우물에서 꺼내 올려주기는 커녕 흙을 퍼붓자 더욱 더 악을 쓰고 울부짖었다. 그래도 주인은 묵묵히 우물을 메워나갔는데 한참을 그러다가 문득 들어보니 당나귀가 더이상 울부짖지 않고 잠잠해진 것이 아닌가.
주인은 이상하고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나귀는 우물 속에서 더이상 울부짖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등에 떨어지는 흙을 바닥으로 털어버리고 그 흙을 발판으로 우물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당나귀는 자신을 매장시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불행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많이 있어왔던가. 그런데 그것이 우리를 절망케 하고 낙심케 하였는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고 풍요롭게 했던가. 사람들은 불행 앞에서 두 가지로 반응한다. 절망하고 낙심하여 불행에 묻혀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과 불행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발전하고 강인해지고 성실한 인간성으로 변모하게 된다.
고통 속에서 불행을 발판으로 진주 같은 자아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난 시절 어려운 고통의 시절을 살아왔던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일했으며 성실하게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며 삶의 지혜를 배워왔던가.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이 우리에게 진흙을 퍼붓고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을 때 우리는 오히려 발전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성숙하고 강한 영혼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 고통은 단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생 동안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 성경에는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이 된다는 말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된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있다.
삶이 불행한가. 불행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절망하고 포기하여 불행이 우리를 덮어버리도록 두는 것과,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얼굴이다. 불행의 어느 얼굴을 보며 살 것인지는 당신의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비록 우화지만 미련한 당나귀도 자신에게 떨어지는 흙을 털어버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났는데, 인간인 우리가 불행에 파묻히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