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못말리는 영어사랑
나의 못말리는 영어사랑
  • 거제신문
  • 승인 201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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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국 칼럼위원
▲석진국 변호사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영어라는 놈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교과서는 'Tom and Judy'였다. 'Good morning Tom, Good morning Judy', 이렇게 시작된 영어 공부, 그 스펠링이란 걸 다 외워야 하고, 게다가 발음기호, 액센트까지….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하느냐, 어떤 절망감이 다가왔다. 아하 영어란 놈은 암기 과목이구나, 무조건 외워야 하는구나. 미국 사람들은 우리 한국어를 이렇게 힘들여 배우지는 않을 건데….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놈 영어는 참 재미없는 놈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중학교가 지나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차츰 영어에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구나, 특히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알게 되고 문장을 해석하는 재미 등 뭔가 알 수 없는 흥미를 차츰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대학입시를 위해서 영문해석, 문법 그리고 발음기호를 주로 공부했고, 영어로 듣고 말하고 하는 소통 공부는 전혀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자연계 전공을 하면서 교재가 주로 영어로 되어 있었고, 멋을 내느라고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들고 다니며 보았다. (우리나라 독재에 관한 내용이 까맣게 지워져 나왔던 기억이 난다) 가뭄에 콩 나듯이 외국인이 보이면 그냥 슬슬 접근해서 말을 붙여보곤 했다.

그러다가 마산에서 1988년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호주에서 온 영어강사 David Hogan과 친구가 되었다. 그와 거의 1년 동안을 붙어 살다시피 했다. 죽어 있던 영어가 살아난 것 같았다. 영어로 말을 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즉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말을 배워서 부모와 이야기를 시작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너무나 재미있고,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나고 나니 호주가 내 머리 속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한국은 이런데 호주는 이렇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1년 동안 호주에 관한 설명을 들은 셈이었다. 너무나 호주에 가고싶었다.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혼자서 호주까지 날아갔다. 거기서 그의 아버지 Bob Hogan과 만나서 그 집에서 자면서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많은 호주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마치 영어의 바다에 빠진 것 같았다.

그렇게 영어로 말하기를 즐겨오면서도 20여년간 해오는 이 변호사 직업에는 그다지 필요가 없고, 이후 해외 여행을 하게되면 좀 쓰일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재작년 이곳 거제에 와서 공증 사무소를 열게 되니 거제에 너무나도 많은 서양인들이 있고 실제로 공증을 하러오는 서양인도 자주 있다.

공증인은 공증할 서류의 내용과 어떤 공증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파악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서양인들과 소통하여야만 하는데 통역이 없이도 비교적 자유롭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서 공증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

정말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랑해온 영어가 실제 나의 업무에 요긴하게 쓰이다니…. '배워서 남 주나' 정말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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