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봄맞이
  • 거제신문
  • 승인 200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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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원 거제박물관장

며칠간 날씨가 제법 쌀쌀하더니 오늘은 한결 따뜻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산을 찾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소리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이제 막 꽃 봉우리를 맺기 시작한 듯  진달래의 끝가지가 자주색을 띈 채 볼록하니 솟아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풀들이 돋아나 있고, 쑥들이 봄나물을 캐러 오는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소담스레 돋아 나 있다. 어김없이 봄이 온 것이다.

이렇게 봄이 찾아오면  필자는 봄에 심을 나무와 꽃들을 챙기는 일부터 시작한다. 여기서야 나무시장이 그리 크지 않으니 몇몇 종류의 나무와 꽃을 구하고 난 후에는  인터넷을 이용한다. 나무시장을 검색하다보면  다양한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묘목과 종자를 골라서 바구니에 담는다.

호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대부분 어린 묘목들이다. 필자가 큰 나무나 활짝 핀 꽃보다도 어린 묘목이나 종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호주머니 사정도 그러하려니와  어린 묘목이나 종자를 사다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종자나 묘목이 택배로 부쳐져오면  이들을 키우기 위한 배양토를 만들고 정성스레 뿌리를 펴서 심거나 파종을 한다.

그리고는 물을 주고 너무 춥지 않도록 적당히 바람막이도 해주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 여간하지 않다.

이런 어린 꽃이나 나무는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옮겨심기를 해야 하는데,  옮겨 심을 장소를 미리 물색해 두고 잡초를 뽑아버려야 한다.

어린 나무나 꽃이 잡초 속에 있으면, 죽어버리거나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일들도 필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터득한 지식이다.

나무나 꽃이 좋다고 심을 장소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양을 주문하고서는 다음에 손을 볼 요량으로 급한 김에 대충 심어놓으면, 십중팔구는 그만 잊어버리거나 때를 놓쳐버려 나중에는 꽃이나 나무를 구경하기가 어려워 진때도 많았다.

남들은 필자를 보고 성격이 느긋하다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척 급하고 또 덤벙대는 일이 많아서 실수할 때도 많다.

차분해 지려고 노력하는 일 중에 하나가 나무나 꽃을 키우고 돌보는 일인데, 남들이 느긋한 성격이라고 필자를 평했다면 아마 꽃이나 나무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심어놓고 싹이 트는 시간까지 시간 맞춰 물도 주고, 보온을 위해 양지바른 곳에 무거운 모종판을 들고 옮겨 다니기도 하면서 부지런을 떠는 일들이 참는 것과 기다리는 여유를 다소나마 안겨 준 것 같다.

며칠 전 부산에서 아는 분한테서 베란다에 활짝 핀 프리지아 꽃을 선물 받았다. 꽃을 보내온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면서, 보통 이 꽃은 노란색인데 붉은색이 많이 도는 특이한 종이라서 사진 찍어 보낸단다. 사진으로 보니 꽃의 색이 곱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고맙다고 느끼는 것은  50이 거의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도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때 덜 묻은 그 분의 마음이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보내는 그 정성이다.

엊그제 필자는 흑대시(검은 감 나무)와 비타민 나무, 칼슘나무, 붉은 단풍나무 등 10여종의 묘목을 나무시장에서 인터넷으로 구했다.

새끼 손가락만한 화이트 가문비나무의 모종을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1m쯤 자랐을 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즐겁다. 며칠 후 쉬는 날이면 어린 묘목들을 심을 자리를 미리 장만해야겠다.

그리고 올해는 필자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꽃이나 나무를 심자고 권해 보려한다. 키우는 정성을 통해 마음의 수양도 하고, 축하해야할 일이 있을 때 꽃가게에 가서 돈 몇 만원 주고 화분하나 사서 가는 일보다는, 직접 손으로 잘 가꾸어서 아는 이들에게 선물할 때 그 기쁨도 한 번 맛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더구나 저녁시간에 술자리에 앉아 돈이나 정치얘기만  하지 말고, 이제 나무나 꽃 이야기도 하면서 나이에 걸맞는 변화도 추구해 보자고 넌지시 얘기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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