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지역으로 보아서는 지역을 대표해서 국가대사를 운영할 만한 인물을 가리는 선거고, 더 넓은 시각으로는 연말 대선정국의 향배를 가리는 시금석이 된다.
그런데 올 선거는 분위기가 신통찮다는 평판이다. 예선전에서 너무 힘을 소모했다고 투덜거리고, 정당 줄 세우기가 지나치게 지역민심을 외면했다고 투덜거린다.
선거란 누굴 선택하고 보면 다시 임기만큼 세월을 기다릴 것이고 정치의 봄은 그때 다시 시작되기 마련이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서 봄이 늦다는데 너무 더디게 온다. 매화가 늦게 피고 동백의 봉오리가 한참이나 뜸을 들여야 한다.
지난주 영하로 뚝 덜어진 고현만의 삭풍 앞에서 봄 같지 않은 봄의 의미가 어디서 오는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지럽게 건물마다 내 걸린 후보자들의 표정에서 멈췄다.
옳은 정치인을 뽑는 선거라는 제도가 늘 갈팡질팡하는 기득권 싸움으로만 치닫는 동안에는 민주의 봄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생각한다.
천리 밖 어느 밀실에서 줄서기를 강요하고, 겨우 내 목을 빼고는 그 선택을 차지하려는 기회주의자 마냥 서성거리던 후보들이 과연 민주적 권리의 주소를 어떻게 읽을지 고민이다.
특히 이번 선거분위기를 만드는 동안 여론조사나 모바일 같은 민심의 동향은 한낱 구실에 불과했고, 겉치레로 전락해 버렸다.
듣기로는 수많은 후보 진영이 이 방식을 위해 적잖은 예산을 낭비했고, 민심의 당사자에게서 짜증 섞인 응답과 질타로 선거불신만 가중시켰다.
중앙 정치판이 봄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개화를 준비하는 나무를 이리저리 옮기고 나무이름을 바꿔 보았지만, 그렇다고 고약한 날씨에 꽃이 제대로 필 리가 만무하다.
거기다가 선거철이면 늘 선거사무실을 드나드는 선거꾼들이 어리석은 후보들의 낭비를 부채질하고 헛소문을 만들어 낸다. 정치의 봄은 그래서 늘 더딘 것이다. 우리가 봄을 생각할 적마다 믿는 한 가지 마음은 있다.
세월이 변하는 대로 기다리면 어쨌거나 봄은 오기 마련이고, 계절은 주기를 거듭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군 제대를 기다리던 시절을 겪은 분들은 알지만 'X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던 푸념이 있었다.
한국정치가 산업화의 군부정치와 민주쟁취의 과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패거리 정치, 지역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올바른 정당정치, 지방정치의 모습은 언제쯤 보게 될지 답답한 마음이다.
이 과도기 동안은 아직도 세습에 짓눌리고 기득권에 취약한 우리네 민심의 정의가 진정한 봄처럼 제대로 살아나기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