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 중앙로 박씨할배가 사는 길
고현 중앙로 박씨할배가 사는 길
  • 김태영 시민/객원기자
  • 승인 200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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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를 등으로 밀고가는 박씨할배를 보셨나요?

▲ 그 작은 체구 어디에서 힘이 나길래, 폐박스 가득실은 리어카를 하루종일 미실까? 지난해 초 겨울(위) 찍은 할아버지.
3월13일 화요일, 할배를 찾으러 고현 중앙로를 종아리가 땡기도록 걸어다녔다. 화창한 날이라 어려움은 없었지만 평소에는 자주 마주치더니 신경써서 찾는 오늘은 어째 이리 안보이는지.

어렵사리 전에 본 그 할배것으로 보이는 리어카를 발견했다. 박스가 사람 키높이 만큼 겹겹이 쌓여서 고무밧줄에 얼기설기 묶여 있는 그 리어카는 여느 할아버지의 세심함이 느껴져서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할배를 만나야만 했다.

왜냐하면, 20년 전 63세로 거제군 환경미화원을 정년퇴직하고, 이후 줄곧 고현 번화가에서 '거리박스'를 모아 생계유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폐자원재활용에 관심갖고 있는 나로선 왕선배이기 때문이다.

▲ 지난해 9월 할아버지 모습.
할배가 거래한다는 고현 S고물상에 찾아가서 사는 집을 물었다. 정확히는 알려주지 않고 어디 쯤이라면서 가서 물어 찾아가라고 했다. 중앙병원 위, 물어물어 찾아간 할배의 댁은 한 지붕아래 네 세대가 있는 월셋방 중 가운데였다. 문을 두드리니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는 삐그덕하는 샷시문을 여셨다.

먼저 인사하고는 먼저번 길에서 만나 몇 마디 나눴던 누구라고 했더니 기억하시고는 들어오라고 했다. 마른 체구에 중학생 정도의 키밖에 안되지만 인정만큼은 인색하지 않을 인상이다.

작아 보인 셋방인데 가운데 문을 달아서 예상치 못한 거실이 있었다. 방문을 열었더니 배우자인 할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방이라고 하기에는 가구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어 두사람이 누우면 빈틈이 없어 보였고 답답함을 느낄만한 공간이었다.

안대를 쓴 이유를 물었다. 원래 왼쪽 눈을 다쳐서 안보인다고 했다. 군대도 안갔는데 젊을 때 눈에 유리가 박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란다. 그럼, 평소에 표도 안나더니만 한 눈으로 두 눈 행세를 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에 이르자 잡초가 꽃보다 생명력은 끈질기더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할매가 효자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라 부축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일 하다 말고 들어왔다는 대답을 시작으로 가정사도 궁금하여 대충 여쭈었다.

살림이 궁색하여 혹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아니냐고 했더니 하나 있는 아들과 주소가 같이 되어 있어 보조금같은 혜택은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월세와 전기세등등은 아들이 맡아서 다 내준다고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리어카 하나 가득차면 그게 얼마짜리가 되느냐고 했더니 박스 kg당 20원~35원이라 100kg쯤에다 고물 몇가지 보태서 4천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두 리어카하는 날은 아침 일찍 나가서 해 질녘에 들어올 때라는 것이다. 하루에 10000원 벌기가 쉽지 않다는 말로 이어지면서 옆에 있던 할머니는 한 숨을 내뱉으며 붉어진 눈시울을 한 손으로 가리셨다.

내가 할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를 다시 한 번 설명드렸다. 왕선배라고 하면 이해 못하실 것 같았고, 박스 모으는 분들이 있기에 한낮에도 고현거리가 이만큼 깨끗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도 건강하셔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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