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감에게서 배운다
정대감에게서 배운다
  • 거제신문
  • 승인 20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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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조선시대 육판 가운데 나라의 재정을 관장하는 호조판서(戶曹判書)의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다.

1년 넘기기 힘들다는 자리를 무려 10년간이나 재임한 사람이 영조 때의 정홍순(鄭弘淳)이다. 후에 좌의정까지 오르신 분이다.

높은 벼슬을 오랫동안 지내셨지만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사셨다. 어느 때 집을 수리하던 일꾼과 삯 문제로 다툰 일이 있었다. 옆에 있던 아들이 어른의 신분으로 천한 공인(工人)과 노임으로 다투시는 것은 체면문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나는 한 나라의 정승으로 내가 하는 일이 표본이 될 수 있는데 삯을 많이 주면 그것이 예가 되어 오히려 가난한 백성들이 곤란을 겪게 된다"고 했다.

어느 해는 딸의 혼사일이 정해지자 걱정하는 부인에게 내가 알아서 다 준비할 터이니 당신은 여식애 교육이나 잘 시키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식 날 아침까지도 예복과 면포를 비롯한 혼수는 물론 준비시켰다는 음식마저 도착하지 않았다.

부인이 안달하자 정대감은 태평스럽게 한다는 소리가 "장사꾼에게 오래 전에 일러 놓았는데 잊은 모양이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소인배들과 싸울 수도 없고 하니 그냥 간소하게 예나 올립시다"라는 말이었다. 이는 정대감의 작전이었다.

요즘 조선일보에서는 '부모의 눈물로 올리는 웨딩마치'라는 주제로 한국의 결혼문화를 진단하고 있다.

결혼이 사랑보다는 비즈니스가 되어버린 탓으로 부모는 연봉에 맞먹는 예식비로 속이 타고 허리가 휜다.

평생에 한 번 뿐이라고 부추기는 상술과 뻐기고 싶은 졸부들의 과시욕, 그리고 이를 부러워하는 철딱서니 없는 젊은이까지 삼박자가 결혼문화를 흐리게 하고 있다.

지난 2월 권민호 거제시장은 딸 혼사를 연고가 없는 진주에서 치르면서 청첩장 없고, 예물 예단 없고, 축의금 없는 작지만 빛나는 결혼식을 만들었다.

누군들 멋진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겠냐마는 목민관의 청렴을 이해하는 딸의 마음이 더 대견하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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