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고 묻어둘 일인가
부끄럽다고 묻어둘 일인가
  • 거제신문
  • 승인 2007.0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일광 장목초등학교 교장

합천이 뜨겁다. 갑자기 전국의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명칭을 이 지역 출신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따 ‘일해(日海)공원’으로 확정한데 대한 거부의 목소리 때문이다.

더러는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시대적 폭거’니, ‘민족혼의 말살’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반역사적 행동’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는 등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기 바쁘다.

심지어 합천을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번 결정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또 한쪽에서는 지자체의 고유권한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이며, 사사건건 남 하는 일에 물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짓거리이므로 이를 무시하자는 찬성집회로 맞불을 놓는다.

지금 나는 합천의 일해공원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려하거나 찬반에 대한 의견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해공원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딱할 만큼 잊어버리고 사는 거제의 한 인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랑(東朗)을 아는가?

1년 가야 연극 한 편 제대로 안보고, 동랑이라는 이름조차 낯설 테지만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김유신의 아들 화랑 원술의 이야기를 극본으로 읽은 기억은 있을 것이다. 그 작품을 쓴 사람이 바로 이 분이시다.

1905년 거제 둔덕에서 태어나 1974년 고혈압으로 운명하기까지 희곡과 연극 연출을 비롯하여 연극평론, 극단 운영, 드라마센터 건립 등 평생을 문화 예술계, 연극계를 이끌어 온 선구자이시며, 한국 근대연극사 1세기는 그를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의 동생이 유명한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선생인데 청마에 대해서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고 있지만 동랑에 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청마는 문학적 업적보다 통영과 출생지 다툼으로 더 알려지고 말았다.

사람이 태어날 때 두 곳에서 동시에 태어날 수 없는 일인데 거제에서는 거제에서 태어났다 하고, 통영에서는 통영에서 태어났다고 서로 우기니 이런 불가사의한 일도 있는가 보다.

청마보다 세살이 많은 동랑은 이미 출생지 싸움에서는 벗어나야 할 텐데 아직도 우리 문단사에는 동랑조차도 출생지를 통영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동랑의 비극은 그가 친일작가였다는 데서 비롯된다. 물론 초기 작품은 친일과 거리가 멀다.
1932년 처녀작이라 할 수 있는 토막(土幕)은 일제의 수탈 속에서 황폐화해가는 농촌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특히 이 극은 당시 신파극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상업주의적 대중 연극에 반기를 들고 서구 사실주의 연극을 도입한 한국 근대 연극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

그런 그가 국민문학을 통하여 ‘내선일체’와 ‘대동아 평화’를 역설하는 조선총독부의 뜻에 동조하게 된다.

작품 「대추나무」는 만주로의 강제이민정책을 선동하고 부추기고 있고, 작품 「북진대(北進隊)」는 친일파의 거두 일진회 이용구의 활동을 그리고 있는 등 여러 곳에서 그는 친일이 나타난다.

작품에서 뿐 아니라 이론에서도 1941년 「매일신문」에 ‘국민연극수립에 대한 제언’을 게재하여 일본의 정책을 적극 선전하고 나서면서 황민화 연극 소위 국책극의 이론과 실제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끝까지 지조를 지켜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마는 아쉽게도 그는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통영 남망산 공원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1995년 철거당하는 수모까지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당해야 한다. 동랑의 친일에 대하여 숨기거나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변명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하고 반역자로 몰아도 거제는 동랑을 안고 가야 한다. 그의 아픔에 대하여 감싸고 안아줄 땅은 거제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동랑청소년연극제가 있고, 서울예술대학에는 동랑예술극장이 있지만 거제에는 동랑에 대해 너무나 무심하다. 그 흔한 연극제 하나 없다.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일해공원이 부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