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들은 수선화와 히아신스, 팬지, 데이지, 진달래, 영산홍, 작약과 목단에 상추와 쑥갓 등을 심었다. 이러다 보니 봄이 들면서 이 작은 마당은 아침마다 새로운 얼굴들을 내밀어 집안에 사는 사람을 반긴다.
어느 날 아침에 수선화와 히아신스가 희고 연한 머리를 디밀고 올라와 탄성을 내게 하더니 그 다음은 작약의 빨간 순이, 다음은 산마가 길게 머리를 내민다.
지금은 죽순이 미끈한 자태를 자랑하며 올라 와 있다. 작고 볼품없는 촌집이지만 이렇게 꽃과 채소와 나무를 품고 있는 마당이 있어 참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다. 게으르게 잠 많은 사람을 저절로 깨워 아침 마다 마당으로 불러내니 마치 동화 속 신묘의 요정들이 사는 것 같다.
2월에 매화가 피면서부터 수선화와 히아신스, 팬지가 이어서 피고 지더니 지금은 하얀 작약이 피었다가 지면서 분홍의 작약이 뒤를 잇는다. 이렇게 꽃 피고 지는 생태가 신비롭게도 이 작은 마당에서 끊이질 않는다. 이 신비로운 생태가 아침에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밤늦은 시간 집에 들며 마당을 들여다 보니 하얀 작약이 혼곤히 잠을 잔다. 정오에 활짝 펴 꽃잎을 열고 있던 작약이 그 꽃잎을 다 오므리고 자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꽃들도 잠을 자지....' 한 동안 잊고 지낸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이 느낌에 조악한 문명의 이기에 갇혔던 몸의 먼지를 털어내듯이 치를 켜본다. 그리고 불을 켜고 찬찬히 살펴보니 사랑초도 데이지도 잠을 잔다.
헌데 패랭이꽃만 꽃잎을 활짝 열고 있다. 아차, 싶어 불을 끄고 살며시 툇마루로 올라 눈을 감고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린다.
은은히 유자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이것은 촌집 마당의 것은 아니건만 저 화초들과 나무들을 스쳐 쓰다듬고 오니 잠자는 저들의 향기 같다.
우리가 어느 때,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제목의 회지를 발간할 때 이 의미가 꽃같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희망을 주자는 뜻으로 알았다.
이제 보니 이것만이 아니다. 꽃들에게서 희망을 배우라는 또 다른 뜻인 것을 이제 새삼 깨닫는다. 꽃들은 제가 피어나야할 때, 제가 안은 색체만큼, 제가 머금은 향기를 피어내고 발하며 품는다.
꽃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들의 전부를 보고서 다가오게 하고 제 각각 품새의 자태로 끌리게 해 감탄 짓게 한다. 서로의 색채가 달라도 모두가 예쁘게 제 몫을 하며 전부를 아름답게 한다.
요즘 같이 범법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 하며 보수가 보수 아니고, 진보가 진보도 아닌 불편한 진실이 만연한 즈음 이 꽃들에게서나마 희망을 얻고 배운다. 내일 아침, 작지만 예쁘게 깨어날 꽃들을 기대하고 단잠 드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