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의 이해
다문화의 이해
  • 거제신문
  • 승인 2012.0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위원 김한석
▲ 김한석 시조시인
문화의 절대 가치는 그 지역 그 가족(주민)이 또한 절대적으로 존중될 때 가능하다. 문화의 생성 자체가 지역적인 공간성을 벗어나지 않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날 다문화 시대에 있어 국적을 달리한 문화가 다양하다. 국가간에 또는 민족끼리 서로 다른 문화를 수용하기에는 아무래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남의 것이 우리 것보다 나아 보여 금방 친하고 싶은 마음이 되는가 하면, 감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원해지는 수도 있다. 이럴 때의 문화는 대개 그 문화의 뿌리가 습관일수도 있다고 본다.

세상에는 별에 별 습관들이 많다. 인류 문화생활에 지천으로 쌓여있는 것도 습관이 아닐까.

여기서는 인간 개개인의 습관을 제외하더라도 민족끼리 겨레끼리 그리고 국가간에 서로 다른 별난 습관들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베트족은 혀를 쏙 내밀어 반가운 인사를 한다든지 에스키모족이 주먹으로 상대의 뺨을 때리며 역시 반가워하는 인사도 있다. 중국의 인사는 두 손 모아 들어올려 공손한 인사를 하고 스페인은 그야말로 만나서 기쁜 듯 끌어안고 한 바퀴 돈다.

굳이 하나로 통일되어 언제나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유달리 끼니를 두고 서로 정을 나누는 인사 법은 매우 독특하다. 아침 자셨습니까? 하고 어른께는 반드시 하루 첫 인사를 공경스럽게 열어가는 지역 정서가 흔하다.

오랜 습관은 문화로 굳어진다. 좋고 나쁘고, 우열이 있고 없고 간에 습관과 문화의 상관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정에 부딪혀 인성에 뿌리내린 습관은 지속적 반복에서 문화로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습관 역시 오랜 공동체적 유래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로 살아난다. 그만큼 힘이 있고 가치로 굳어지기 때문에 변화에는 노력이 든다.

그대로 남의 습관과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일은 이제 시급해졌다. 남의 나라와 민족의 습관화된 문화를 이해를 넘어 애정을 가지고 대하지 않으면 당장 살길이 막막해지기도 한다. 국제결혼을 하여 아내를 둔 사람의 심정은 충분히 이런 말이 사실이 된다.

더구나 이러한 며느리(외국인)를 시어머니나 부모세대는 아들 딸 이상으로 온전한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면 생계조차 난감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혼율의 수위가 높아져서 좋을 것이 없다면 늘 가정생활의 귀감들이 반드시 있다고 본다. 그것은 역시 역지사지를 넘어 상대방의 습관과 매너(문화)의 뿌리를 생존에 연유해 봄이 타당하다.

우리네 인성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화도 내고 정도 준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습관이 왜 남의 눈에는 용납이 안 되는 것일까?

애정과 사랑의 묘약만이 이러한 생활 습관을 생명시할 수가 있다. 지역과 국가가 다르듯 민족 역시 토속과 겨레로 분화되어 그 뿌리와 연유는 인류 개개인에 이를 수 있다.

누가 이러한 뿌리깊은, 이미 문화화된 습관을 탓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로 이끌어 강요하지 말고 남에게 베풀어 이해하는 공존의 드넓은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다문화 시대의 삶의 지혜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